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시정연설에서 북한 핵·미사일과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과 직접 마주 보며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단성 있게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국교정상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나아가 “지금까지의 발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새 시대의 근린외교를 힘차게 펼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관계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를 외면하면서 북-일 관계를 내세운 것은 다분히 국내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초계기 위협비행으로 인한 갈등의 책임을 회피하는 한편 한반도 대화 국면에서 제기된 ‘저팬 패싱’ 논란을 불식하겠다는 의도다. 한일 갈등이 아베 내각의 지지율을 올렸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지만, 아베 측근들이 ‘한국이 미래지향적이지 않아 아예 거론하지 않은 것’이라고 언론에 흘리는 행태에서 그 속내가 드러난다.
그동안 한일 관계 악화 속에서도 일본은 여러 차례 북한과 비밀 접촉을 벌이며 관계 개선을 모색해왔다. 비록 일본인 납치 문제에 가로막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2002년과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전격적인 평양 방문과 같은 돌발적인 ‘깜짝 외교’로 반전을 노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수백억 달러에 이를 일본의 식민지배 보상 카드는 북한으로서도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