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숙 산업1부장
2010년부터 지분을 취득하기 시작한 행동주의 펀드 퍼싱스퀘어캐피털 대표인 윌리엄 애크먼이 2011년에 이사회 멤버가 되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자신이 미는 인물로 교체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매출이 급감하고 당기순이익이 적자로 돌아섰고, 이사회는 다시 전임 CEO를 불러들였다. 퍼싱스퀘어는 2013년에 2차 공격에 나섰다. 애크먼이 JC페니의 회장인 토머스 엔지버스와 CEO의 하차를 요구한 것이다. 표 대결 결과 애크먼이 오히려 이사회에서 물러났고 지분도 팔았다.
파도는 물러갔지만 회사 경영 상황은 참담해졌다. JC페니는 2013년에 대규모 적자를 냈고 당기순이익 적자폭도 548%나 늘었다. 기업 상황이 나빠지자 사람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2013년 고용을 전년보다 27%나 줄인 이 회사는 이후에도 매년 인력을 더 줄이거나 간신히 유지했다. 이 회사는 2017년에야 겨우 당기순이익을 흑자 전환했다. 실적 악화가 전적으로 행동주의 펀드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 펀드의 무리한 요구가 회사의 성장성을 깎아먹은 것은 분명하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본다. 슬기로운 주주라면 환호했을까, 통탄했을까.
주가를 단기에 끌어올리고, 주주들에게 배당을 늘리라는 요구는 주주 입장에선 얼핏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정도라는 게 있다. 양털을 깎으려다 자칫 양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글로벌 기업 48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무리한 주가 부양이나 배당 요구는 결국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해친다. 짧게는 몇 달, 길어야 2, 3년 주인 노릇을 할 사람들 입맛에 맞추려다 장기 투자자의 이익을 갉아먹는 결과가 나오기 쉽다.
이 이야기가 단지 몇 년 전 있었던 해외 사례일 뿐일까. 한국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이 눈을 아시아권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아시아권은 기업 성장의 역사가 짧고 서구권보다 지배구조가 취약하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도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토종 펀드들은 2015년 316개에서 지난해 9월 말 현재 530개로 급증했다. 국회에는 투자 제한을 완화해 사모펀드를 더 활성화하자는 법안까지 올라와 있어 앞으로 토종 행동주의 펀드는 더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 반면 대주주나 장기 투자자에게 미국 등이 허용하는 차등의결권이나 황금낙하산을 허용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단을 마련해주자는 논의는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기울어질 경우 피해는 투자자 개인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분기에 10조 원이 넘는 이익을 내는 훌륭한 기업이 지배구조가 취약하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면, 이를 방어하려다 실적이 흔들리고 고용을 줄인다면 국민은 환호할 수 있을까.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