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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별 1곳이상 안배… 경제성 떨어져 ‘세금 먹는 하마’ 될수도

입력 | 2019-01-30 03:00:00

[23개 지역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지자체별 어떤 사업 선정됐나





정부가 29일 지방 위주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 리스트를 내놓은 것은 기업과 일자리가 서울과 경기에 집중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과도하게 벌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3개 예타 면제 사업 중 7개는 이미 기존 예타에서 경제성 부족으로 탈락한 사업이다. 정부는 다른 시도와 연계하면 경제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하지만 자칫 완공 뒤 이용자가 없는 ‘유령 사회간접자본(SOC)’을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지역 간 시너지 창출로 경제성 부족 극복”

국가재정법은 지역균형발전 또는 긴급한 경제 사회적 상황에 대응할 필요가 있으면 예타를 면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균형발전과 함께 ‘지역 간 시너지’를 강조했다. 일례로 도로 건설 때 한 지역만 놓고 평가하면 이용자가 적은 것으로 분석돼 경제성이 낮게 나온다. 반면 인근 지역 도로와 연결해 수요를 추정하면 수치상 이용자가 늘어 경제성이 높아진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이 밖에 사업계획이 구체화돼 신속 추진이 가능하거나 고용위기지역 내 사업을 우선한다는 기준도 적용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11월 지자체별 설명회를 열면서 예타 면제 작업에 착수한 뒤 3개월 만에 24조 원어치를 선정했다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 등을 충분히 감안했는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예타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예외를 인정하는 예타 면제도 정교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지 않는 사업도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됐다. 전북도 숙원사업인 새만금국제공항은 전남 무안공항과 차로 1시간 거리에 들어선다. ‘새로운 수요 창출 잠재력이 높은 사업’ 기준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 사업도 예타 면제에 포함됐다. 동해안 단선 전철화 사업은 지난해 예타에서 비용 대비 수익성 비율이 0.59로 경제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타를 통과하려면 이 점수가 ‘1’을 넘어야 한다. 울산 외곽순환고속도로 사업은 2017년 예타 결과 “고용 유발이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다른 사업보다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 지역 숙원사업, 지자체장 핵심 공약 대거 포함

이번 예타 면제 대상에는 각 지역의 숙원사업이나 지자체장의 핵심 공약이 대거 포함됐다. 경북 김천에서 경남 거제를 잇는 172km 구간에 고속철도를 놓는 남부내륙철도 사업이 대표적이다. 사업비가 총 4조7000억 원에 이른다. 정부는 이 노선이 완공되면 서울에서 거제까지 현재 4시간 반에서 2시간 40분대로 이동 시간이 단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에서 선정된 2개 사업은 모두 남북한 접경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특수성이 고려됐다. 도시철도 7호선을 경기 포천까지 연장하는 도봉산 포천선 사업에는 옥정∼포천 19km 구간에 1조 원이 투입된다. 포천에서 서울 강남까지 출퇴근 시간이 현재 150분에서 70분으로 줄어들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영종도와 옹진군 신도 간 연도교를 구축하고 인천공항과 인근 섬을 관광도로로 연결하는 인천 평화도로 건설 사업에는 1000억 원이 투입된다. 3조1000억 원이 투입되는 평택∼오송 총 46km 구간 복복선화 사업은 지자체에서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됐다. 경부, 호남고속철도가 합쳐지고 KTX와 SRT가 교차하는 병목 구간이어서 선로 용량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됐다.

○ 완공 뒤 이용자 적으면 유지보수 비용 못 뽑아

이번 예타 면제 사업은 2029년까지 진행된다. 공사비도 문제지만 완공 뒤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수익성이 떨어지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수 있다.

전남 영암군의 포뮬러원(F1) 경기장이 대표적 사례다. 전남도는 2006년 ‘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 대회를 유치하면서 예타를 면제받아 4300억 원을 들여 경기장을 지었다. 하지만 흥행 부진으로 2014년부터는 정식 경기 자체가 안 열리고 있다. 지금까지 경기장 관리 등에 투입된 누적 손실은 6000억 원이다.

정부는 아예 예타의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6월 말까지 제도 전반을 검토해 대상 사업 기준을 얼마로 할지, 예타 담당 기관을 늘릴지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예타 기준을 완화해 면제 대상을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예타 면제 조치로 국가 재정을 정치적 동기로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가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최혜령·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