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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의 뫔길]그리운 사랑의 바보, 김수환 추기경

입력 | 2019-01-31 03:00:00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만난 인물들의 사진으로 만든 대형 모자이크. 동아일보DB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암 투병을 할 때 바로 옆방에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이 입원해 있었다. 추기경이 ‘수녀도 그럼 항암이라는 걸 하나?’라고 묻자 ‘항암만 합니까. 방사선도 하는데’라고 답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추기경이 한마디를 건넸다. ‘그래? 대단하다, 수녀.’”

몇 년 전 출간된 이해인 수녀의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에 실린 내용의 일부다. ‘주님을 위해서 고통을 참아라’라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인간적인 위로가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줬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다음 달 16일이 김 추기경의 선종(善終) 10주기다. 그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선종 직후 명동대성당 현장 취재는 내게도 특별한 경험이자 기억이었다. 그해 명동에서의 하루하루는 초유의 사건에 허둥대면서 돌아오는 ‘끼니’(기사) 챙기기에 바쁜 시기였다. “그게 다 복이다. 언제 이런 큰일을 치러 보겠느냐”는 얘기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편집국의 한 선배는 칼럼에서 “40만 명의 자발적 추모 인파가 모인 ‘명동의 기적’, 그리고 ‘추기경 신드롬’”이라고 썼다. 공식적으로는 서울대교구장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국민장이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5년 뒤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파파 신드롬’이 불었지만 당시는 축제에 가까웠다는 점에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명동의 기적 이후, 햇수가 더해지면서 김 추기경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종종 뜻하지 않게 그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접했다. 어떤 사람들에게 김 추기경은 여전히 살아 있다.

최근 강원 원주시 소초성당에서 만난 김태원 신부와의 대화에서도 그랬다. 사제와 화가의 길을 동시에 살아온 그에게서 추기경과의 일화가 나왔다.

“당시로서는 신부가 전액 장학생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도와준 게 추기경님이다. 파리에 오면 유학생들과 만나 영화나 전시를 본 뒤 맥주도 한잔 사주셨다.”

그러면서 “서울에 있으면 이런 것도 할 수 없다”며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인과의 대화에서도 김 추기경은 빠지지 않았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지낸 월주 스님의 회고록을 연재할 때였다. 김 추기경과 월주 스님은 1971년 청담 스님 열반 때 조문 온 추기경을 처음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만난 뒤 40년 가깝게 알고 지낸 사이였다. 앞서 세상을 뜬 강원용 목사(1917∼2006)와 추기경, 스님이 종교는 달랐지만 외환위기와 노사 갈등 등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민족 화해와 국민 통합을 위해 힘을 모은 삼각형 같은 존재였다는 언급도 있었다. 평소 종단을 대표한다는 격식 때문에 언제나 추기경님, 송월주 스님으로 불렀지만 선종 당시 조문하러 갈 때는 달랐다고 한다. 스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단어는 ‘바보 형님!’이었다.

대북 관련 이야기를 나눌 때도 김 추기경은 등장했다. 지난해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으로 방북했던 원택 스님은 추기경 강연 때 들었다는 말을 빌려 남북 교류 원칙의 하나를 언급했다. 김 추기경은 “제가 돈 내고 북한 간다면 이게 선례가 되지 않겠느냐. 향후 남북 교류가 계속될 것인데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없었다. 이후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적인 모임에서 종교 문제나 이른바 ‘어른의 부재’라는 주제로 말머리가 향하면 김 추기경은 어김없이 소환됐다. 이념과 지역, 계층에 관계없이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푸념 끝 결론이었다.

한 신부에게 김수환 추기경 정신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대로 바라봐 주는 인간애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강력한 리더십이 아니라 품어주고 안아주고 말을 들어주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leadership)’, 섬김의 리더십이죠. 그런 지도자, 그런 큰 어른이 없으니 추기경이 더 그리워진다”고 했다.

김 추기경 선종 뒤 10년이 됐지만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종교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원로와 지도자들이 일각에서는 열광적으로 지지받지만 다른 쪽에서는 비난받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스스로를 바보라고 불렀던 ‘바보, 김수환’이 더 그리운 나라가 됐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