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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윤종]애들은 다 싸우면서 큰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입력 | 2019-02-01 03:00:00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 자칫 학부모들에게 ‘몰매’ 맞을 말이다. 인권과 안전이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시대착오적 발언이기도 하다. ‘폭력을 미화하냐’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생각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학창 시절, 기자가 다닌 학교에는 어느 교실에나 꼭 있는, 또래보다 덩치 큰 친구 A가 있었다. A는 ‘친구 지우개 칼로 자르기’, ‘쉬는 시간 반찬통 열어 소시지 뺏어 먹기’ 등 힘이 세다는 이유로 반 친구들에게 ‘갑질’을 했다.

기자는 A와 대결을 준비했다. 한 달 계획을 세워 발차기를 연습했다. 당시로서는 고가인 6000원짜리 쌍절곤을 사기 위해 집 청소를 돕고 용돈을 받았다. 비용이 부족해 쌍절곤 연결 줄이 노끈으로 된 2000원짜리 제품을 구입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2004년)를 따라 한 건 아니다. 기자가 준비한 시기가 먼저다. 그런데 마당에서 키우던 개가 쌍절곤 줄을 물어뜯어 끊어버렸다. 맥이 빠져 싸움을 포기했다.

치기 어린 시절의 추억이지만 배운 게 많았다. 집 구석구석이 저절로 깨끗해지는 게 아니었다. 항상 쓸고 닦는 어머니의 손길이 있었다. 싼 물건에는 다 이유가 있었고, 미성년자일지라도 무기를 쓰면 죄가 가중된다는 법도 알게 됐다. 반 친구와 실제 주먹다짐한 후에야 진심으로 사과하는 법, 다툰 친구와 소통하는 법도 깨쳤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교육부의 ‘학교폭력 제도 개선 방안’을 비슷한 관점으로 지켜봤다. 개선안에는 이르면 3월부터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 교내봉사 등을 이행하면 학교생활기록부에 가해 사실이 기재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미한 학교폭력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지 않고 학교가 자체적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게 된다.

개선안이 나온 배경에는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이 분쟁을 확대하고 학교의 교육 기능을 축소시킨다는 비판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반 친구가 ‘××’라고 욕만 해도 학교폭력으로 신고가 되면 학폭위가 반드시 열린다. 생활기록부에 가해 사실이 기재된다. 경미한 다툼도 기록으로 남게 되니 학부모들은 ‘입시에 불리해진다’며 상대 학부모와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이번 개선안을 보며 ‘싸우면서 큰’ 청소년기가 다시 떠올랐다. 다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이들 스스로 갈등을 조율하고 소통하는 교육적 기능을 강화하려는 것이 이번 개선안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얕았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처벌이 약화되면 ‘좀 해도 되잖아’라는 분위기가 생길 수 있어요. 내 아이가 학교폭력으로 다치거나 심리상담을 받고 학교에 못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장 우선시될 건 피해자입니다. 피해 아이를 회복시키는 게 중요해요. 개선안에는 그런 배려가 없어요.”

2011년 학교폭력으로 목숨을 끊은 대구 중학생의 어머니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지적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해자 처벌이 강화된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이 시행됐다. 교실 내 사소한 다툼을 성장 과정으로 여긴 기자나, 경미한 폭력에 대한 제재를 낮추는 개선안을 낸 교육당국 모두 ‘피해자 입장’이란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사소한 폭력이라도 계속 반복되면 심각한 폭력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개정안이 현장에서 시행된다면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피해자 입장에서 확실하게 개정안 보완이 필요한 이유다.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