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때 ‘존엄사’ 얘기 나눠 보세요] ‘연명의료 중단 상담사’ 기자가 직접 해보니…
《 설 전날인 4일은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이 전면 시행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임종을 앞두고 회복할 가망이 없을 때 환자의 뜻대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존엄사가 국가 제도 안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가족끼리도 ‘품격 있는 죽음’에 대해 터놓고 대화하기를 꺼리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막상 아무런 사전 논의 없이 누군가가 임종기를 맞으면 연명의료를 계속할지를 두고 갈등을 겪는 가족이 적지 않다. 이번 설 연휴에 연명의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는 건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해 기자가 ‘연명의료 상담사’가 돼 어떤 대목을 고민해야 할지 미리 살펴봤다. 》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실에서 동아일보 조건희 기자(오른쪽)가 한 30대 여성의 사전의향서 작성을 돕고 있다. 조소현 인턴기자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학년
이날 A 씨가 작성한 사전의향서는 만약 임종을 앞두고 의식을 잃어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없게 될 경우에 대비해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미리 국가 전산망에 기록해두는 문서다. 사전의향서는 연명의료계획서(말기나 임종기에만 작성 가능)와 달리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건강할 때 써둘 수 있다. 단,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지정한 상담실을 방문해 관련 교육을 이수한 상담사와 일대일 대면 상담을 거쳐야만 작성할 수 있다. 기자는 지난달 25일 교육을 받고 상담사 자격을 얻었다.
○ “가족과 대화할 때 고마움을 먼저 말해야”
서울 도봉구 창동노인복지센터에서 열린 웰다잉(well-dying) 교육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주민이 참석했다. 품격 있는 죽음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지만 연명의료 결정 제도는 이제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제공
연명의료결정법을 만든 주역인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가족과 (연명의료 관련) 대화를 차일피일 미뤄도 안 되지만 서두르는 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가족과 갈등 없이 연명의료 중단을 얘기하려면 ‘죽음’보다 가족에게 평생 느껴온 고마움과 미안함을 얘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지막 결정은 스스로 내리고 싶다는 뜻을 밝혀야 한다. 주변에 연명의료의 대상이 된 친척이나 지인을 언급하며 누구나 그런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서로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녀에게 “병원비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는 말부터 꺼내는 건 금물이다. 돈을 아끼려 인공호흡기를 뗀다는 죄책감이 들 수 있어서다.
○ ‘몰라서, 멀어서’ 못 쓰는 현실
기자의 상담 과정에서 대다수가 사전의향서를 모른다는 데 놀랐다. 지난해 5월 위암 진단을 받은 강기웅 씨(81)가 그랬다. 혹시 의식을 잃으면 꼼짝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해야 하는 줄 알았던 강 씨는 병원 측의 안내로 사전의향서를 쓴 뒤 안심했다. 박아경 국립암센터 사회사업실장은 “뉴스를 접할 기회가 적은 저소득층일수록 제도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홍양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대표는 “사전의향서 제도를 널리 홍보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상담을 활성화해 죽음을 맞이하는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가까운 상담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나 전화로 확인할 수 있다.
조건희 becom@donga.com·박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