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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환자 가족들, ‘연명의료 그만 받자’… 의논시기 놓치고 후회

입력 | 2019-02-01 03:00:00

[설 때 ‘존엄사’ 얘기 나눠 보세요]68%가 환자 의식 잃은후 결정




“끝까지 치료를 받자고 한 건 제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네요.”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병동에서 만난 이모 씨(60·여)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 씨의 어머니(80)는 지난해 10월 자궁내막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항암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설명을 듣고도 이 씨는 어머니의 치료를 고집했다. 연명의료를 포기하면 어머니가 생의 의지를 완전히 놓아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3차 항암 치료도 소용이 없자 이 씨는 열흘 전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연명의료 중단’ 얘기를 꺼냈다. 뜻밖에도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선뜻 연명의료계획서를 썼다. 이 씨는 “돌이켜보니 어머니는 진작 마음의 준비를 하셨는데 자식들의 욕심에 고통만 연장시켜 드린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30일까지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는 3만5839명이다. 이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직접 연명의료를 거부한 환자는 1만1555명(32.2%)이다. 나머지 2만4284명(67.8%)은 환자가 미처 뜻을 밝히지 않은 채 의식을 잃어 환자 가족들의 합의로 연명의료를 거부했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중시하겠다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취지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는 죽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강할 때 이런 얘기를 나누지 않으면 큰 병에 걸린 뒤엔 더욱 말을 꺼내기 어렵다. 특히 환자가 먼저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고 말해도 가족들은 ‘환자의 본심은 연명의료를 계속 받고 싶다는 쪽일 거야’라며 지레짐작하기 일쑤다. 실제 지난해 존엄사법이 시행된 이후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밝혔음에도 가족들의 극렬한 반대로 제대로 된 상담조차 받지 못하고 숨지는 일이 적지 않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말기 및 임종기 환자와 가족이 차분히 상담과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상담료 등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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