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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년들 창업도전 두려워해… 넷플릭스 같은 혁신기업 안나와”

입력 | 2019-02-01 03:00:00

美 대표적 ICT규제-정책 전문가 크로퍼드 하버드대 교수 인터뷰




“한 가지 문제는 정부가 통신회사에 전화를 걸어 ‘가격을 바꾸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법의 지배(rule of law)’가 보다 더 투명하게 작동하는 걸 보고 싶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및 정책 전문가인 수전 크로퍼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54·사진)는 “여기(미국)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며 한국의 규제 문제를 꼬집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뉴욕 포드재단에서 열린 신간 ‘Fiber(광케이블)’ 출판기념회 뒤에 만난 크로퍼드 교수는 고화질 영화도 몇 초 만에 내려받을 수 있는 ‘5G(5세대) 이동통신’ 시대의 선두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하지만 한국 정부 규제에 대해선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서비스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에 대한 증거나 데이터 없이 가격을 낮추게 하는 것은 불편하다”며 “투명한 법의 지배가 이뤄진다면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규제와 함께 실패를 두려워하는 한국의 안정 지향적 문화도 거론했다. 훌륭한 통신망 인프라를 갖추고도 구글 넷플릭스 등이나 헬스케어, 교육 분야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을 배출하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국에서 만난 청년들은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고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보다) 창업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삼성 등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와 6000만 명에 불과한 한국어 시장도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미국은 전화선을 통한 정액 요금제를 도입한 정책 결정으로 인터넷 초창기 선두 주자가 됐습니다. 그 뒤 초고속통신망에 대한 정책과 감독 기능이 사라지면서 기업들은 시장을 분할하고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크로퍼드 교수는 미국에 대해 “기업가 정신과 혁신은 뛰어나지만 광케이블 보급이 전체 가구의 10%에 불과할 정도로 통신 인프라가 뒤떨어져 있다”며 “과거의 정책적 오류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5G의 기회를 놓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느린 인터넷 환경에 최적화하다 보니 세계적인 압축기술을 보유한 동영상 스트리밍 회사인 넷플릭스가 탄생했다는 예도 들었다.

크로퍼드 교수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6개월 앞둔 2017년 8월 방한해 자율주행 버스, 가상현실 등 KT가 세계 최초로 시범 실시한 5G 서비스를 체험하고 이를 신간 ‘Fiber’ 첫 장에서 미국이 배워야 할 모범 사례로 소개했다. 황창규 KT 회장의 하버드대 특강을 듣고 직접 탐방까지 한 지한파 전문가다. 2017년 박원순 서울시장 집무실에 설치된 서울시정 현황판인 ‘디지털서울시장실’을 미 언론에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정부는 통신 인프라를 필수재로 보지 않고 점심 메뉴의 ‘참치 샌드위치’ 정도로 간단하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전기를 보급할 때처럼 통신망과 같은 기본 인프라는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되, 민간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자유롭게 경쟁하며 요금을 낮추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정부가 중국 최대 통신회사인 화웨이 규제에 나선 것과 관련해 “화웨이의 통신장비로 이뤄지는 감시에 대한 걱정과 중국의 경제적 힘에 대한 우려가 복합된, 또 다른 무역전쟁”이라며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수익성보다 애국심을 중시하라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화웨이를 막을 수는 있지만 미국 자체 산업 육성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한 달 10달러에 훌륭하게 인터넷을 쓸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예일대를 졸업한 크로퍼드 교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연방통신위원회(FCC) 공동 인수위원장, 과학기술혁신정책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낸 IT와 통신 정책 및 규제 전문가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의 기술혁신 자문위원을 거쳐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의 브로드밴드태스크포스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망 중립성’ 정책 폐지 등에 비판적이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