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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래 봬도 맏며느리다. 결혼해서 33년, 설과 추석 차례를 빠짐없이 차렸다. 물론 쎄가 빠지게 일한 건 아니다. 시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명절 전날 시댁에 가서 음식 장만하고, 당일 아침 일찍 가서 차례상을 차린 게 고작이긴 하다.
지난해 보도한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 시리즈. 첫 회에서 한국인의 명절 스트레스 주범인 차례와 제사에 대해 현재의 시점에서 고민하는 내용을 다뤘다.
82년생 김지영까지 변하지 않는 풍경
처음엔 나도 괜찮은 며느리였다. 생전 안 해보던 음식을 해보는 재미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손 빠르게 한 가지를 해내면 또 다른 일이 주어지는 것이었다(이 사실을 깨달은 다음엔 녹두전이든 생선전이든 아주 공들여 부치면서 시간을 끌었다).
무엇보다 슬픈 건 차례를 다 지내고도 시부모님은 “친정집에 가보라”는 소리를 안 하는 현실이었다. 82년생 김지영도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그래서 출산율이 추락한 거다).
시댁이라는 섬에 사는 사람들은 내 딸을 기다리면서도 사돈댁에서도 딸을 기다린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한 듯했다.
‘주문 차례상’이라고 합리적인가
시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 나는 굳게 결심했다. 이제는 안 지내리라. 이대로 살다가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조상귀신들을 내가 죽거나 이혼할 때까지 모셔야 할 것 같았다.
그해 추석 전날, 나는 종일 열심히 책을 읽는 척하고 있었다. 당연히 장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다 저녁 때 띵똥 소리에 현관을 열어보니 ‘차례상’이 당도한 게 아닌가. 남편이 나 모르게 주문한 모양이었다.
전 세계에 이런 차례나 제사문화가 남아있는 곳은 이 나라밖에 없다. 심지어 제사라는 제도가 시작된 중국서도 이러진 않는다!
명절 칼럼이 히트 치는 이유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으로 지난해 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히트 치기 전, 송호근 교수(당시 서울대 교수)도 ‘제사를 회상함’(2013년 2월 12일) 칼럼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사회학자답게 그는 제례를 창안한 조선 건국세력의 비밀을 연구했고, 경국대전에 ‘6품 이상은 3대 봉사, 7품 이하는 2대, 서민은 부모제사’만 지내도록 못 박았음을 들어 부친과 담판을 벌였다고 했다(그러나 송 교수는 지고 말았다). 남자들도 명절이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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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이집트에 살던 사람들은 죽으면 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고, 합격하면 이승으로 다시 돌아와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고 믿었다. 거대한 파라오의 무덤, 피라미드와 미라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파라오라면 다시 살아나 영생을 누리려는 것도 당연하다.
이승도, 저승도, 며느리는 싫다
아무리 현세가 고통스러워도 결국엔 정의가 승리한다고 믿은 나라가 고대 이집트였다. 공공의 양심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표명된 곳도 이집트였다고 한다. 그 위대했던 나라가 왜 멸망해서 오늘날 군부독재국가가 되었을까. 오늘 나는 혼자 이집트로 간다.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