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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국민연금의 한진칼 주주권 행사, 대기업 길들이기 악용 안된다

입력 | 2019-02-02 00:00:00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어제 지분 7.34%를 가진 한진칼(대한항공 지주회사)에 대해 주주권 행사를 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이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스튜어드십 코드)을 도입한 이후 첫 적용 사례다.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보유 지분이 10%가 넘으면 단기 매매이익을 반환해야 한다는 ‘10%룰’ 조항 때문인지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국민연금이 주요 대기업의 경영에 직접 간여할 수 있는 첫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다음 달 열릴 한진칼 주총에서 사내이사가 배임·횡령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즉시 사퇴하도록 회사 정관을 바꾸라고 제안할 예정이다.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이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당초 대한항공과 한진칼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의 첫 대상으로 거론된 것은 이 회사의 재무적 상태보다는 사회적 여론에서 촉발됐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기업에 대한 대중의 감정에 따라 ‘주주의 장기적 이해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민연금이 경영에 개입하는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213개 기업에 대해 5∼10%의 지분을 갖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언제든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결정은 정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수탁자 책임전문위원회는 한진칼에 대해 주주권 행사 반대 우세 의견을 냈으나 기금위에서 뒤집힌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한 발언의 영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기금위는 위원장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인 데다 정부 측 인사 비중이 높아 정권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앞으로 기업들은 경영진 리스크가 나오지 않도록 더더욱 각별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도 국민연금을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한다거나 정치적 이해를 위해 경영 압박을 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려면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외부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노후자금을 불리는 데만 전념할 수 있도록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갖추는 것이 선결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