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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안영배]설날과 독립운동

입력 | 2019-02-02 03:00:00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일제강점기인 1924년 아동문화 운동가 윤극영(1903∼1988)이 작사 작곡한 동요 ‘설날’은 지금도 한국인 누구나 흥얼거리는 명절 노래다. ‘까치설날’은 섣달 그믐날이고 우리의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라는 이 노랫말은 전통적이고 서정적인 감성을 자아내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매년 신정(양력 1월 1일)이 되면 학생들을 학교에 모이게 한 뒤 일본 노래인 ‘식가(式歌)’를 부르게 하면서 한 해를 시작했다. 일본이 신정 쇠기를 강압한 데는 배경이 있다. 19세기 후반 일본은 메이지 유신 체제에서 그들 전통의 음력 5대 명절을 폐지하고 일왕 생일인 천장절, 1월 1일 원단(신정), 2월 11일 기원절이라는 양력 삼대절(三大節)을 도입함으로써 일왕 중심의 근대화를 주창했다. 일왕 숭배를 위해 기념력까지 바꾼 일제는 이를 식민지 조선에도 도입해 황국신민화를 꾀했다.

▷일제가 구습으로 격하시켰지만 한국인들은 설 명절을 버리지 않았다.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지키는 이들도 많았다. 100년 전 3·1만세운동이 일어나기 한 달 전인 설날(양력 2월 1일)에도 한국인들은 차례상 차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조차 “세배를 다니는 어른과 아이들로 전차마다 가득하다”(1919년 2월 2일자)고 보도했다. 윤극영이 일제의 일방적인 신정 강요에 반발해 지은 ‘설날’을 흥얼거리며 민중은 설을 소중한 전통으로 여기는 마음을 다졌다. 일본 순사가 어린이들이 노래를 못 부르게 틀어막아도 소용없었다.

▷입춘(立春) 절기 즈음에 맞이하는 설날은 정서적으로나 생체리듬적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명절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양력 1월 1일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새해 첫날로서 그 의미가 크다. 8·15광복 후 남북한 정부가 각기 음·양력설을 하나로 통일하려 무던히 애썼지만 실패했다. 이제는 양력 1일 1일과 설날을 이중과세의 잣대로 보기보다는 신구(新舊), 음양의 조화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단, 어느 날 차리든 차례상은 허식은 버리고 정성만 담으면서.
 
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