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부모님 건강 체크해봅시다
명절을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이는 아마도 타지로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님일 것.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평생을 살아온 분들. 연로한 탓에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에게 서운한 소리 한번 못 하는 분들. 이번 설엔 작지만 의미 있는 효도를 하는 것은 어떨까. 부모님의 건강을 직접 체크해 보자.
‘베스트 닥터’가 아니어도 좋다. 정성과 성의만 있으면 된다. 질병의 전조증상을 꼼꼼히 따져보자. 부모님의 안색을 살피고, 묻고 또 묻자. 그러면 ‘비상사태’를 막을 수 있다. 하나 더. 명절 이후로 부모님의 건강검진 예약을 잡아드리면 더 좋다.
환자의 20∼40%는 전조증상을 보인다. 증상은 만성적이라기보다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특성이 있다. 증상이 하루 정도 지속될 수도 있지만 짧으면 30분 이내에 사라진다. 이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전조증상이 일단 나타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중풍의 습격을 받을 확률이 10배 정도 높다. 실제로 전조증상을 무심코 넘겼다가 2, 3일 이내에 뇌중풍이 덮쳐 병원을 찾는 사례는 흔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한쪽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마비 현상이 나타난다면 뇌중풍 전조증상일 확률이 높다. 양쪽 팔다리가 저리다면 당뇨 합병증 등으로 인한 신경계 손상이 원인일 수 있다. 이 또한 원인을 파악해야겠지만 일단은 뇌중풍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손발이 차갑다면 혈액순환 장애, 밤에만 손목이 저리다면 말초신경 장애일 수 있다.
어지럼증도 살펴야 한다. 앉았다가 일어설 때 어지럽다면 귓속 평형기관 문제일 수 있지만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일단 심한 정도에 주목해야 한다. 대체로 △천장이 빙빙 돌거나 △술에 취한 것처럼 휘청거리거나 △중심 잡기가 힘들거나 △심하게 멀미하는 것 같거나 △눈을 감았는데도 어지럽다면 뇌중풍 전조증상으로 본다.
두통도 체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머리에 벼락이 내리친 것 같다고 느낄 만큼 극심한 두통이 갑자기 나타난다. 갑자기 시야의 한쪽이 어두컴컴해지거나 사물이 2개로 보이는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말이 어눌해지면서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면 이 또한 전조증상으로 봐야 한다.
○ 심근경색, 가슴 통증 없다고 무시해선 안 돼
심근경색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 발생한다. 대부분은 심근경색 이전에 혈관 일부가 막히는 협심증 단계를 거친다. 따라서 협심증 단계에서 나타나는 전조증상을 잘 파악해야 한다.
대표적인 전조증상은 가슴 통증이다. 특히 움직이거나 운동할 때 나타나는 가슴 통증이 협심증과 심근경색의 전조증상일 확률이 높다. 당뇨병, 고지혈증, 흡연이 병을 유발하는 위험 요소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여기에 해당한다면 통증을 세밀히 살펴야 한다. 밤에 잠자리에 누웠을 때만 통증이 나타난다면 협심증일 확률은 낮다. 이 경우에는 위산 역류가 원인일 수 있다. 다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흥분했을 때 가슴 통증이 자주 나타난다면 심장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가슴이 조금 뻐근한 정도의 통증은 심근경색의 전조증상이 아니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 혹은 매운 고춧가루를 뿌린 듯 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특징이다. 가슴에서 시작한 작은 통증이 주변으로 퍼져 목이나 턱, 치아가 아픈 적은 없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가슴 통증이 사방으로 퍼진 방사통으로 악화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 경우 △심한 무력감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저혈압 △의식 잃음 등이 전조증상으로 나타난다. 노인이라 기력이 떨어지고 폐활량도 적은 게 호흡곤란의 원인이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증상은 질병의 전조증상이란 것을 명심하자.
잘 살피면 다른 심장질환도 발견할 수 있다. 심부전증에 걸렸다면 호흡할 때 쌕쌕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며 마른기침을 자주 한다.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기침을 자주 한다. 잠자다가 자지러지는 기침을 하며 여러 번 깼다면 연휴가 끝난 후에 곧바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 게 좋다.
○ 치매와 파킨슨병도 미리 발견할 수 있어
자주 멍한 표정을 짓거나 목소리가 작아지고 떨리면 파킨슨병을 의심할 수 있다. 구부정하게 굽은 채로 종종걸음을 걷는 것도 파킨슨병의 전조증상이다. 특히 TV를 시청할 때 넋을 놓거나 손을 떨면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치매는 빨리 발견할수록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우선 부모님의 기억력이나 계산 능력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는지 살펴보자. 성격 변화도 체크 포인트다. 예전보다 말을 덜 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유달리 많아졌다면 치매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노인에게 자주 나타나는 관절 질환도 살펴야 한다. 부모님의 걸음걸이를 잘 관찰하자. 장원혁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부모님의 걷는 모습만 유심히 살펴도 웬만큼은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며 “평소와 조금 다른 모습이며,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 힘들어하거나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면 퇴행성관절염이거나 엉덩관절(고관절) 질환일 수 있다”고 말했다.
10분도 걷지 않았는데 양쪽 다리에 쥐가 나고, 허리를 구부리면 통증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척추협착증일 확률이 높다. 허리를 굽히면 통증이 사라지니 자꾸 허리를 굽힌 채로 걸으려 한다. 이럴 때 허리를 펴보게 하라. 그때 양쪽 다리가 심하게 당긴다면 협착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등산을 즐기는 부모님이라면 등산할 때 통증이 나타나는지 물어보라. 척추협착증이라면 산을 오를 때는 통증이 없다가 내려올 때 통증이 나타난다.
▼“식사 제때 드세요?” “슬프거나 우울하신가요?”▼
노화라 생각 말고 유심히 보세요 ‘부모님 건강질문’
연세 탓에 부모님의 식사량이 줄어들고 활동량도 적어졌다고 생각하지 말자. 조금만 더 광범위하게 생각하면 이는 단순한 노화 과정이 아니라 모든 질병의 전조 증상이다. 이은주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자식은 물론이고 부모님 자신도 노화 과정이라 여기고 무심코 넘기는 증상이 나중에 병으로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인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6가지 건강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 부모님께 다음 질문을 해 보자.
① 식사를 매일 규칙적으로 하나요?
끼니를 규칙적으로 챙기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무릎과 허리 통증 때문에 장 보러 가지 못했을 수도 있고, 치과 질환 때문에 끼니를 거르는 사례도 많다.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이유를 묻다 보면 무릎과 허리, 치아의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② 술 또는 담배를 하나요?
과음과 흡연은 노인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부모님이라면 당연히 금주와 금연이 필수다. 당장 병에 걸리지 않은 노인이라 하더라도 음주와 흡연으로 인해 심혈관계 질환, 인지기능 장애, 치매, 안과 질환, 낙상,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③ 여러 약을 장기 복용하나요?
많은 노인들이 동시에 여러 약을 복용한다. 또한 복용 지침을 지키지 않고 약을 마음대로 먹는 노인도 많다. 5종류 이상의 약을 장기 복용하거나 복용 지침을 어기면 없던 병도 생길 수 있다. 부모님이 여기에 해당하는지 확인하라.
④ 지난 6개월간 낙상 경험이 있나요?
노인 낙상의 가장 흔한 합병증이 골절이다. 일단 골절이 생기면 회복하는 데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된다. 회복이 됐다 해도 기능의 30% 정도만 돌아온다. 한번 낙상하면 추가 낙상 위험이 있다. 추운 날 외출을 자제하도록 당부해야 한다.
⑤ 기억력이 약해졌나요?
치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질문이다. 기억력이 떨어졌다면 일단 두뇌 활동을 활발히 하도록 권하라. 식후 가볍게 동네를 걷는 등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사회 활동을 할 것을 추천하는 게 좋다.
⑥ 슬프거나 우울한가요?
노인 우울증을 판단할 수 있다. 노인 우울증은 화병이나 소화불량, 불면증 등 여러 증상으로 나타난다.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가는 노인이 많지 않아 병을 키우는 경향이 강하다. 자칫 심장질환, 수면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