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전쟁/임지현 지음/300쪽·1만8000원·휴머니스트
기억이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복잡한 문제다. 사변적이지만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찍은 이 사진이 그렇다. 여러 곳에서 철길을 따라 끌려 들어간 희생자의 아픔을 상징하는 대표적 이미지로 꼽히지만 실은 이 구도는 수용소 내부에서 입구를 촬영한 컷이다. 물론 그럼에도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트릭인가, 리얼리즘인가”. 휴머니스트 제공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은 뒤 좀 후회했다. 명쾌한 문장 덕에 배운 게 많지만, 머리도 가슴도 뻑뻑해졌다. ‘역사에 대한 기억’이 이다지도 복잡한 일일 줄이야. 자칫 양비론이나 양시론에 휘둘리고픈 유혹마저 느껴졌다.
2017년 미국 뉴저지주 버건 카운티 법원 앞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저자는 “이 문제가 한일 양국의 기억을 넘어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기억되기 시작했다는 징표”라고 봤다.
속에서 천불이 날 얘기지만, 저자는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도 냉정히 들여다볼 것을 주문한다. 사례로 든 ‘집합적 유죄’란 개념이 그렇다. 해나 아렌트는 단지 독일인이란 이유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항변했다. 만약 전후 일본이 똑같은 논리로 일제의 만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 더. 그렇다면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서 벌인 행위에 대해서는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물론 사안마다 경중이 다르며 ‘침묵’과 ‘부정’과 ‘왜곡’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기억 전쟁의 면죄부를 ‘내로남불’로 선택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해결의 실마리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과 그 과거를 기억할 책임을 구분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결국 하나씩 풀어나갈 수밖에 없으리라.
‘기억 전쟁’은 몹시 날카롭고 매섭다.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암세포는 우리 사회, 우리 인식 속에서도 살아서 꿈틀거린다. 어떤 수술이나 약물이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넋 놓고 있다간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암을 앎으로써 다시 한번 출발점에 서야 한다. 지난한 싸움이라 할지라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