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의 정치경제학… 설 이후로 미뤄진 변동직불금 지급
동네 마트에 가면 쌀 포대마다 적힌 소비자가격은 쌀 수요와 쌀 농가의 생산량에 따라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가격이 아니라 여야 정치권의 가격 합의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정치권이 합의하는 쌀 가격이란 쌀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변동직불금의 기준이 되는 ‘목표가격’을 말한다. 이 목표가격이 높으면 변동직불금이 늘어나 농가에 유리하지만 나랏돈이 많이 든다. 반면 목표가격이 낮으면 변동직불금이 줄어 재정 부담은 줄지만 농가에 불리하다.
○ ‘여의도 합의’에 좌우되는 한국 쌀값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매년 2월, 보통 설 전에 농협을 통해 쌀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쌀 변동직불금’을 지급해왔다. 올해는 이 직불금 기준이 되는 목표가격을 국회에서 합의하지 못하는 바람에 지급 여부조차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2월 내 새 목표가격을 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여야 간 이견이 크다. 이대로라면 2018년산 쌀에 지급될 예정인 2533억 원의 예산이 사용처를 찾지 못할 우려도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는 표심에 더 크게 좌우되는 모습이다. 올해는 쌀 직불제 개편까지 예고돼 있어 논란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쌀값이 정치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생산량의 20∼30%를 사들여 가격을 조절한 1950년 수매제도 시행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양곡관리법 제정 이후 처음에는 국회 동의를 얻어서 정부가 수매가를 결정했다. 1972년에 국회 동의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이 단독으로 승인하다가 1988년에 다시 국회동의를 받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매년 추곡 수매가와 수매량이 결정되면서 진통이 심해졌다. 추가 수매와 수매 가격을 높여달라는 시위로 지자체는 몸살을 앓았다. 농민들은 도정도 거치지 않은 벼를 80kg짜리 포대에 담아 시·군청 앞마당에 잔뜩 쌓는 ‘야적 시위’를 했다. 수확을 마치고 11월경부터 시작되는 시위가 때로는 해를 넘겨 1∼2월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수매제도는 결국 2005년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을 계기로 폐지됐다. 정부는 ‘양정개혁’이라고 했지만 시장 기능을 살리지는 못했다. 정부는 여전히 수확기에 생산된 쌀 일부를 사들여 가격 하락을 막았고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목표가를 정하고 직불금을 줬다.
○ ‘세금 먹는 하마’ 직불금 개편 필요
쌀 변동직불금은 매년 쌀 목표가격을 정해 놓고 실제 쌀값이 이에 못 미치면 그 차액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목표가격과 실제 쌀값 차이의 85%를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 두 가지로 보전한다. 고정직불금은 쌀 재배면적에 따라 고정 금액이 지급된다. 반면 변동직불금은 시중 쌀값과 목표가격에 연동하면서 해마다 규모가 들쭉날쭉했다. 2011년부터 3년 동안 생산된 쌀은 목표가와 시세 차이가 거의 없어 직불금이 들지 않았다. 반면 2016년산 쌀의 경우 시세 폭락으로 목표가와 차이가 크게 벌어져 국고 1조4900억 원이 직불금으로 투입됐다. ‘세금 먹는 하마’였던 셈이다.
국회는 5년마다 변동직불금의 기준이 되는 목표가격을 정해야 하지만 2018∼2022년산 쌀에 적용될 목표가격에 합의하지 못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11월 국회에 80kg당 19만6000원을 목표가격으로 제시했다. 반면 야당이 주장하는 목표가격은 이보다 훨씬 높다. 민주평화당 24만5000원, 자유한국당 24만 원, 정의당 22만3000원이다.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쌀 목표가격이 시장가격보다 높으면 과잉 생산을 자극할 수 있는 만큼 변동직불금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쌀농사, 밭농사를 불문하고 면적당 동일한 고정직불금을 지급하고 소규모 농가에는 지불금액을 높게 책정해 소농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