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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맞아?…설 연휴도 없는 ‘카톡지옥’

입력 | 2019-02-03 09:52:00

주52시간 도입에도 업무량은 그대로…퇴근후 ‘카톡 업무지시’ 더 늘어
‘카톡금지법’ 잇달아 발의됐지만 모두 계류…정부 “대안 없다”



© News1 DB


“연휴요? 주말에도 일하는데 무슨…”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씨(32)는 ‘설 연휴에 쉴 수 있느냐’는 말에 “어림도 없는 소리”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씨가 다니는 회사는 올해 1월1일부터 ‘주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늦은 밤까지 일하던 삶에서 벗어나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찾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환상은 곧 깨졌다.

이씨는 “주52시간제 첫날부터 퇴근 후에 상사에게 ‘업무지시 카카오톡’을 받았다”며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근무시간만 줄어든 탓에 퇴근 후나 주말에 일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3일부터 최장 4일의 ‘설 연휴’가 시작된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4일 모두 쉴 수 있다. 하지만 연휴를 받아든 직장인들은 ‘온전히 쉴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씨는 이번 설에는 노트북을 가지고 귀경길에 오를 계획이다. 그는 휴대전화 메신저를 보여주며 “지금도 밤낮으로 업무지시가 날아드는데 연휴라고 다르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인 10명 중 7명 “퇴근 후에 업무지시 카톡 받아”

정부가 직장인들의 ‘저녁’을 돌려주겠다며 지난해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을 상대로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했지만, ‘퇴근 후 메신저 업무지시’ 빈도는 오히려 더 잦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지난해 11월 직장인 456명에게 설문한 ‘모바일 메신저 업무처리 현황’에 따르면 10명 중 7명(68.2%)이 근무시간 외에 메신저로 업무지시를 받았다고 답했다.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전인 2016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직장인 240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응답 비율(70.3%)과 큰 차이가 없는 수치다.

오히려 주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기업의 직장인 중에서 ‘근무시간 외에 메신저 업무지시를 받았다’고 답한 비율은 77.2%(153명)에 달해 수치가 더 올랐다. 주52시간 근무제 취지와 반대로 업무가 퇴근 후 일상으로 옮아간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직장인 사이에는 ‘주52시간 근무제’는 ‘공짜 근무제’라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상사의 업무지시를 받고 주말에 재택근무를 했다는 직장인 김모씨(33)는 “오후 8시까지 5시간 넘게 일했지만, 부서에서 ‘초과근무’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며 “이젠 퇴근 후든 주말이든 가리지 않고 일하는 게 당연해진 분위기”라고 하소연했다.

국내 굴지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한모씨(36)도 “일단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고 집에서 회사 전산망에 접속해 남은 업무를 보고 있다”며 “‘을(乙)’인 직장인은 회사의 업무지시를 거부할 수 없으니 결국 회사에만 좋은 법 아니겠나”고 꼬집었다.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 중인 회사에 다닌다는 최모씨(27·여)도 “전날 야근하면 다음 날 오후에 출근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조정했지만, 아침 7시만 되면 회사 단체카톡방이 울려댄다”며 “이번 설에도 수시로 업무지시 연락이 올 것을 생각하니 벌써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고 진저리를 쳤다.

◇국회에 잠든 ‘카톡금지법’…노동부 “대안 없다”

‘주52시간 근무제’의 부작용으로 ‘퇴근 후 메신저 업무지시’와 ‘보이지 않는 근무시간’은 더 늘었지만, 해결책은 오리무중이다.

한때 한국사회에도 퇴근 후에는 회사의 업무지시를 거부할 권리,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카톡금지법’이 잇달아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잠들어있다.

‘카톡금지법’은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는 회사로부터 단절돼 여가생활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보장하는 프랑스의 ‘로그오프법(Log Off·엘 콤리 법)’과 독일의 ‘안티스트레스법안’을 본뜬 법안이다.

우리나라도 2016년 6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시간 외에 카톡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해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어 국민의당 손금주, 이용호 의원도 각각 카톡금지 법안을 발의했지만, 모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고용노동부도 2016년 ‘근무혁신 10대 제안’을 마련하고 2017년에는 노동부 실무진이 직접 카카오 본사를 방문해 카톡을 이용한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 관행을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카카오에 퇴근 후에는 회사 단체카톡방을 비활성화하는 등 기술 협조를 구했지만 거부당했다”며 “현재로서는 근무관행을 개선하자는 취지의 홍보활동 외에 다른 대안을 마련하거나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다른 노동부 관계자도 “근로시간 외 업무지시 제한 등 근로자의 휴식권 보장을 위한 캠페인 등은 추진 중”이라면서도 “지침 마련이나 근로감독 등 법적 측면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고용 늘 거란 정부 환상 깨졌다…카톡금지법 통과해야”

전문가들은 “근로시간을 줄이면 기업이 추가고용에 나설 것이라는 정부의 판타지(환상)가 깨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카톡금지법과 같은 ‘강제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한솔 노무사는 ‘퇴근 후 메신저 업무지시’가 늘어난 점에 대해 “그동안의 장시간 노동이 개인에게 부과된 많은 업무량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기업들이 신규고용이나 추가고용에 나설 것을 기대했겠지만 이는 환상에 불과했다”고 지적하면서 “기업이 나서서 적정 업무량을 조절하지 않는다면 ‘카톡금지법’이나 ‘근무시간 외 업무금지법’ 같은 제도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지난 2017년 8월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던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도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지만 모바일 메신저가 근로자를 직장에 묶어두는 족쇄가 되는 부작용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의원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앞으로 계속 확대 적용될 예정인 만큼 그 이전에 ‘퇴근 후 업무카톡 금지법’을 본격 심사하고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