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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스스로가 경쟁상대일뿐…변호사 캐릭터에 녹아들다

입력 | 2019-02-05 07:08:00


“관객들의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작품이다. 지우가 수호를 성장시킨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법정신을 찍을 때 너무 드라마틱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우리 만의 자아도취로 끝날 수 있다. 여백을 남김으로써 관객들의 감정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영화배우 정우성(46)은 13일 개봉하는 ‘증인’을 이렇게 소개했다. “영화에서 소소한 감정들의 교감, 의도치 않은 감정의 표출이 많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기 감정의 표출이 얼마만큼 드라마틱한지 모르고 지나간다. 언제나 일상에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걸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 사소하지만 특별한 감정을 연기할 수 있어서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신념을 잠시 접고 현실을 위해 속물이 되기로 마음먹은 변호사 ‘순호’(정우성)가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시나리오 지문을 잘 읽지 않는다. 지문에 얽매이면 그것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감정의 표현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배우가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에 너무 빠져버리면 과할 수가 있다. 혼자만의 만족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을 경계했다. 과하지 않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영화 ‘연애소설’(2002) ‘완득이’(2011) ‘우아한 거짓말’(2014) ‘오빠 생각’(2016) 등을 연출한 이한(49)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 감독은 ‘완득이’에서 장애인·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우아한 거짓말’에서는 학교폭력 문제, ‘오빠생각’에서는 한국전쟁이 남긴 아픔과 상처를 다뤘다. 이번 영화에서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변호사와 자폐소녀를 온기 어린 시선으로 담아냈다.

정우성은 이 감독이 “편안한 사람”이라고 했다. “무겁다면 무거운 주제일 수 있는데 섬세하고 가슴 따뜻한 연출력을 보여줬다. 앞으로도 무겁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표현하는 작업을 많이 해주면 좋겠다.”정우성의 배역은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순호’다. 한때는 ‘민변계의 파이터’로 불렸지만 지금은 현실과 타협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다. 어느날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할 기회가 걸린 사건의 변호사로 지목된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를 증인으로 세우려고 한다. 지우를 만나면서 감정의 변화가 생긴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지우의 질문에 삶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고민한다.

정우성은 “염두에 둔 모델은 없었다”며 “정우성이 순호라는 것을 입증해야 됐다. 순호처럼 보여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촬영에 임했다”고 회상했다. “순호와 지우는 각자 인생 속에서의 경험이 다르다. 나이가 많다고 함부로 조언해서는 안 된다. 삶에 있어 절대적인 지혜를 줄 수 없다.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깨우침도 중요한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깨우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김향기(19)와 스크린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향기가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향기가 가만히 앉아있을 때 계속 말을 붙이지 않고 말수가 적은 향기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나를 자꾸 표현하기보다는 상대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게 더 좋은 소통인 것 같다. ‘이 신의 감정은 어떤 것이다’라고 논의하기보다는 향기가 어떻게 지우를 표현하는지 보고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했다.”

1994년 ‘구미호’(감독 박헌수)로 스크린에 처음 등장했다. 영화 ‘비트’(감독 김성수·1997)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내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 ‘태양은 없다’(감독 김성수·1998)에서 또다시 청춘의 얼굴을 표현했으며, 이후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영화 ‘유령’(1999) ‘무사’(2001) ‘똥개’(2003)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중천’(2006)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프렌즈 앤 러브’(2011) ‘감시자들’(2013) ‘나를 잊지 말아요’(2015) ‘아수라’(2016) ‘더 킹’(2016) ‘강철비’(2017) ‘인랑’(2018), 드라마 ‘1.5’(1996) ‘아테나:전쟁의 여신’(2011)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2012) 등에 출연했다.

출세작 ‘비트’에 대해 “나에게 굉장히 많은 것을 안겨준 작품”이라고 돌아봤다. “동시에 영화가 갖는 사회적 영향력, 파급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배우의 책임의식을 느꼈다. 현장에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좋은 동료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배우로서 좋은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마음보다 크다. 모든 스태프에게 격려가 필요하다. 눈 마주치고 인사하고, 노고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다. 고된 작업을 해도 혼자만 피곤한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도전을 추구한다. “사실 모든 영화가 상업영화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주연배우로서 흥행에 대한 부담, 작품에 대한 책임의식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자본이 얼마나 들어갔고, 액션이 멋있어야 한다 등 계속 이런 요소로만 채워가면 배우로서 선택하는 영화의 장르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관객에게 보여질지는 늘 미지수다. 안 해본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뭔가 해볼만한 새로움이 있다면 꼭 해본다. 도전이 재미있는 것 같다. 하하.”

올해로 연기인생 26주년을 맞았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