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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에 강한 단아한 피부미인”…건축의 기본에 충실한 아산나눔재단 사옥

입력 | 2019-02-05 11:15:00

[프리츠커 프로젝트]
● 장소 서울 중구 동호로 208
● 준공 2017년 9월
● 설계 와이즈 건축(장영철·전숙희)
● 수상 2018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




건축계에는 부부 건축가가 많다. 지난 번 프리츠커 프로젝트로 소개된 ‘삼각학교’를 설계한 네임리스 건축의 나은중·유소래 부부처럼 와이즈건축 역시 장영철·전숙희 부부가 공동 설계를 한다.

와이즈 건축은 기발한 건축설계로 유명하다. 어둠 속에서 다른 감각으로 공간을 체험하게 하는 서울 북촌의 전시 공간 ‘어둠 속의 대화’와 서울 마포구 성미산 주택가의 100평 공간을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으로 아로새긴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장영철 대표는 ‘가라지 가게’라는 공방을 운영할 정도로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자랑한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와이즈 건축 사옥 1층 차고(garage)에 세웠다고 가라지 공방이 된 이곳에선 자작나무 합판을 이용해 다양한 수납공간을 창출하는 선반, 의자, 데스크를 제작하는데 독특한 전시작으로 미술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사옥. 사진제공 노경

아산나눔재단사옥. 사진제공 노경


그런데 의표를 찔렸다. 장영철 전숙희 부부에게 와이즈 건축의 작품 중 하나를 자천해 달라 했더니 아산나눔재단 사옥을 골라줬다. 사진으로 봤을 때 회색빛 격자무늬 사무실 건물이라 다소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한 해명은 ‘건축의 기본으로 돌아가게(Back to Basic) 만들어준 작품이어서’였다. 호기심이 생겼다. 평범해 보이는 건축 안에 뭔가 비범한 것이 숨겨 있으리라는 기대도 생겼다. 그래서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사옥을 직접 보러 갔다.

좁고 길쭉하게 사무공간을 쌓아올리다

8층 회의실과 공중정원. 사진제공 노경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작았다. 지하 3층 지상 8층의 빌딩인데 층별 실질적 사무공간은 132㎡(40평)밖에 안 된다. 실제 8층에 올라가 보니 옥상정원 형태로 대나무숲을 조성한 것 외엔 20명 정도 참석 가능한 회의실과 8명가량의 좌담회가 가능한 공간만 들어서 있었다. 그만큼 좁은 공간에 사무공간을 비쭉하게 쌓아올린 것이다.

아산나눔재단은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아산 정주영 회장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2011년 설립된 공익재단이다. 고인의 창업정신을 기리는 청년창업 인큐베이팅 사업을 펼치고 있다. 별도 사옥을 짓기 전에는 전 직원이 297㎡(90평짜리) 사무공간에서 업무를 봤다. 그러다 사옥을 지은 뒤 6층과 7층 2개 층을 나눠 씀에도 전체 사무공간은 오히려 264㎡(80평)으로 줄었다. 4, 5층은 협력업체 대여 공간, 3, 2층은 주차 공간, 1층~지하 2층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 및 상담실로 구성돼 있다. 지하3층은 기계실.

사옥이 들어선 공간은 고도제한이 있어 원래는 6층 높이밖에 지을 수 없었다. 그런데 주차장을 지하가 아닌 지상에 설치하는 아이디어로 고도제한을 풀고 2개 층을 더 쌓아올릴 수 있었다. 아산나눔재단 사옥은 경사로에 위치한다. 그래서 동호로 쪽 정문으로 들어오면 만나는 로비가 지하 1층이고 그 뒤편으로 들어오는 후문이 1층에 해당한다. 그 1층에서 기계식 주차로 2, 3층에 14대의 차량을 수용하게 지상주차장을 설계함으로써 보너스 2개 층이 더 생긴 것이다.

라이브러리 구조의 6,7층. 지홍영 기자


재단 사무공간이 좁아진 것을 해소한 아이디어도 신선했다. 6층과 7층 2개 층을 뚫고 가운데 계단과 중간층을 설치한 ‘라이브러리 구성’으로 시각적 공간감을 확장하는 동시에 추가공간까지 창출해냈다.

내부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내부 기둥이 없는 ‘무주(無柱)공간’을 만든 점도 주효했다. 10mX15m 크기의 공간의 사방 콘크리트 기둥과 기둥 사이의 콘크리트 관에 활시위처럼 휘어질 정도로 팽팽하게 당긴 강철 와이어를 삽입해 하중과 충격을 견디게 하는 포스트텐션 공법을 적용했다.

빛에 따라 숨쉬는 얇고 고운 피부

아산나눔재단. 지홍영 기자

하지만 이 건축의 비범함은 그 속에 숨어있지 않았다. 건축의 외피, 곧 그 피부에 있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 사옥이 크게 느껴진 것은 3면을 둘러싼 격자형 창이 빼곡히 보였기 때문이다. 주차장 입구 쪽인 동편은 주택가 방향이어서 창을 내지 않았다. 1개 층 당 이 격자형 창이 수직으로 3.5개 정도씩 들어가기 때문에 얼핏 보면 20층이 넘는 고층 건물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외부 베네시안 블라인드(EVB). 지홍영 기자

또 다른 착시현상이 있다. 이 격자창마다 블라인드가 달려있는데 보통 블라인드는 건물 내부에 달기 때문에 얼핏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창 외부에 일괄적으로 달려 있다. 그것도 가느다란 강철실로 연결된 알루미늄 재질의 특수 블라인드다. 햇빛이 강한 이탈리아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개발됐다 하여 건축계에선 '외부 베네시안 블라인드(External Venetian Blind·EVB)'로 불린다.

EVB와 외벽 창 창호를 결합한 ‘펑션 원(Function One)’. 지홍영 기자

아산나눔재단 사옥의 EVB는 옥상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태양의 고도와 층별 입사각에 맞춰 통합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국내에서 최초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쉽지 않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정면창의 경우 서향이라 아침에는 블라인드가 다 올라가 햇빛이 잔뜩 들도록 하고 해가 길어지는 오후에는 블라인드가 내려가 이를 차단한다. 단, 주자창이 있는 2, 3층의 블라인드는 늘 내려져 있다. 이를 통해 적절한 채광을 통한 에너지 낭비는 최대 40%, 특히 여름철 냉방부하는 최대 80%까지 줄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피부의 숨겨진 비밀은 또 있다. EVB와 외벽, 창과 창호를 28개의 알루미늄 금형을 조립해 하나의 모듈로 일체화되게 제작했다. 와이즈 건축에서 ‘펑션 원(Function One)’으로 명명한 이 모듈을 공사현장에서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외피를 만들다보니 군더더기 없이 균질한 미학적 효과를 발생시켰다. 이를 통해 EVB, 외벽, 창을 따로 만들 경우 건물 외피가 두꺼워지는 것을 최대 30㎝가량 줄이는 효과를 발생시켰다. 그만큼 내부공간이 더 넓어진 것이다.

일찍이 니체는 “심층 같은 것은 없고 오직 표층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아산나눔재단 사옥이야말로 이 표현에 딱 들어맞은 건축이다. 좁은 실내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얇은 피부 그러면서도 잡티 없이 맑은 피부, 마지막으로 햇빛에 강하면서도 관리비용이 많이 들지 않은 건강한 피부를 빚어냈기 때문이다.

와이즈건축의 전숙희 소장은 “건축의 본질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기술적 미학적 돌파구를 찾다보니 처음엔 생각도 못했던 건축적 해답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경지에 눈을 뜬 기분”이라며 “예술적 심미안이나 기술적 성취를 앞세우기 보다는 해당 건축의 본질을 읽어내는데 충실하자는 목표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75호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