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 프로젝트] ● 장소 서울 중구 동호로 208 ● 준공 2017년 9월 ● 설계 와이즈 건축(장영철·전숙희) ● 수상 2018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
건축계에는 부부 건축가가 많다. 지난 번 프리츠커 프로젝트로 소개된 ‘삼각학교’를 설계한 네임리스 건축의 나은중·유소래 부부처럼 와이즈건축 역시 장영철·전숙희 부부가 공동 설계를 한다.
와이즈 건축은 기발한 건축설계로 유명하다. 어둠 속에서 다른 감각으로 공간을 체험하게 하는 서울 북촌의 전시 공간 ‘어둠 속의 대화’와 서울 마포구 성미산 주택가의 100평 공간을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으로 아로새긴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장영철 대표는 ‘가라지 가게’라는 공방을 운영할 정도로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자랑한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와이즈 건축 사옥 1층 차고(garage)에 세웠다고 가라지 공방이 된 이곳에선 자작나무 합판을 이용해 다양한 수납공간을 창출하는 선반, 의자, 데스크를 제작하는데 독특한 전시작으로 미술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사옥. 사진제공 노경
아산나눔재단사옥. 사진제공 노경
그런데 의표를 찔렸다. 장영철 전숙희 부부에게 와이즈 건축의 작품 중 하나를 자천해 달라 했더니 아산나눔재단 사옥을 골라줬다. 사진으로 봤을 때 회색빛 격자무늬 사무실 건물이라 다소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한 해명은 ‘건축의 기본으로 돌아가게(Back to Basic) 만들어준 작품이어서’였다. 호기심이 생겼다. 평범해 보이는 건축 안에 뭔가 비범한 것이 숨겨 있으리라는 기대도 생겼다. 그래서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사옥을 직접 보러 갔다.
8층 회의실과 공중정원. 사진제공 노경
아산나눔재단은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아산 정주영 회장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2011년 설립된 공익재단이다. 고인의 창업정신을 기리는 청년창업 인큐베이팅 사업을 펼치고 있다. 별도 사옥을 짓기 전에는 전 직원이 297㎡(90평짜리) 사무공간에서 업무를 봤다. 그러다 사옥을 지은 뒤 6층과 7층 2개 층을 나눠 씀에도 전체 사무공간은 오히려 264㎡(80평)으로 줄었다. 4, 5층은 협력업체 대여 공간, 3, 2층은 주차 공간, 1층~지하 2층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 및 상담실로 구성돼 있다. 지하3층은 기계실.
사옥이 들어선 공간은 고도제한이 있어 원래는 6층 높이밖에 지을 수 없었다. 그런데 주차장을 지하가 아닌 지상에 설치하는 아이디어로 고도제한을 풀고 2개 층을 더 쌓아올릴 수 있었다. 아산나눔재단 사옥은 경사로에 위치한다. 그래서 동호로 쪽 정문으로 들어오면 만나는 로비가 지하 1층이고 그 뒤편으로 들어오는 후문이 1층에 해당한다. 그 1층에서 기계식 주차로 2, 3층에 14대의 차량을 수용하게 지상주차장을 설계함으로써 보너스 2개 층이 더 생긴 것이다.
라이브러리 구조의 6,7층. 지홍영 기자
재단 사무공간이 좁아진 것을 해소한 아이디어도 신선했다. 6층과 7층 2개 층을 뚫고 가운데 계단과 중간층을 설치한 ‘라이브러리 구성’으로 시각적 공간감을 확장하는 동시에 추가공간까지 창출해냈다.
내부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내부 기둥이 없는 ‘무주(無柱)공간’을 만든 점도 주효했다. 10mX15m 크기의 공간의 사방 콘크리트 기둥과 기둥 사이의 콘크리트 관에 활시위처럼 휘어질 정도로 팽팽하게 당긴 강철 와이어를 삽입해 하중과 충격을 견디게 하는 포스트텐션 공법을 적용했다.
아산나눔재단. 지홍영 기자
외부 베네시안 블라인드(EVB). 지홍영 기자
EVB와 외벽 창 창호를 결합한 ‘펑션 원(Function One)’. 지홍영 기자
피부의 숨겨진 비밀은 또 있다. EVB와 외벽, 창과 창호를 28개의 알루미늄 금형을 조립해 하나의 모듈로 일체화되게 제작했다. 와이즈 건축에서 ‘펑션 원(Function One)’으로 명명한 이 모듈을 공사현장에서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외피를 만들다보니 군더더기 없이 균질한 미학적 효과를 발생시켰다. 이를 통해 EVB, 외벽, 창을 따로 만들 경우 건물 외피가 두꺼워지는 것을 최대 30㎝가량 줄이는 효과를 발생시켰다. 그만큼 내부공간이 더 넓어진 것이다.
와이즈건축의 전숙희 소장은 “건축의 본질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기술적 미학적 돌파구를 찾다보니 처음엔 생각도 못했던 건축적 해답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경지에 눈을 뜬 기분”이라며 “예술적 심미안이나 기술적 성취를 앞세우기 보다는 해당 건축의 본질을 읽어내는데 충실하자는 목표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75호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