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부동산 증여 역대 최고치 기록, 편법도 기승 ● 돈 벌 능력 없는 미성년자가 몇 십억대 부동산 소유 ● 부모와 공동명의로 건물 사는 이유 ● 자식 명의 대출금 대신 갚아주는 부모들 ● 부모 상가에서 장사하더라도 임차료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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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부동산 증여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 주택 증여 건수는 10만1746건으로, 앞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2017년(8만9312건)에 비해 14%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서울의 증여 거래는 2만2587건으로 이 또한 사상 최고치다. 전년도(1만4860건)에 비하면 무려 52% 늘었다. 특히 고가 주택이 몰린 강남구에서는 증여 거래가 2573건으로 전년도 1077건에 비해 2.5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지난 한 해 부동산 증여가 갑자기 증가한 배경에는 고강도 주택 규제가 있다. 종합부동산세나 양도소득세 등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이 대폭 늘어난 데다 지난해 실시된 9·13대책 이전까지 앞으로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힘을 받으면서 주택을 처분하지 않고 증여를 택한 경우가 급증했다. 올해는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공시가격 인상 등으로 세 부담이 대폭 늘어날 수 있고, 임대사업자 혜택도 축소될 것으로 전망돼 자녀나 배우자 증여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증여가 많을수록 불법 혹은 편법 증여 사례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2017년부터 지금까지 부동산세 탈루, 편법·불법 증여 혐의자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여오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상반기까지 1584명에 대해 탈루세금 2550억 원을 추징했고, 부동산실명법 등 법질서 위반에 대해 관련 기관에 통보 조치했다. 이후로도 지난 8월 29일 부동산 거래 관련 탈세혐의자 360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는 부동산 편법·불법 증여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미성년자에 대한 증여가 급증하고 있다. 2017년 기준 미성년자에게 증여가 일어난 건수는 총 7861건으로 전체 금액은 1조279억 원이다. 이 중 부동산이 32.9%를 차지하고, 유가증권과 금융자산이 절반씩 나머지를 차지한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스무 살 A씨는 현재 일하지 않고도 매달 200여만 원씩 이자소득을 얻고 있다. 소득의 근원은 다름 아닌 경북 예천 소재의 한 농장. A씨가 자신의 명의로 구입한 농장에서 매달 농지 이용료 200여만 원을 받고 있는 것. 이제 갓 스무 살인 A씨가 어떻게 돈을 모아 농장을 살 수 있었을까.
A씨의 뒤에는 큰 농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B씨가 있다. A씨는 아버지로부터 수년에 걸쳐 현금 등 수십억 원을 분산 증여받았고, 이를 예·적금으로 예치한 뒤 이 중 일부를 부동산(농장) 구입에 사용했다. 현행 증여세법상 미성년 자녀에 대한 증여세 비과세 한도는 10년간 2000만 원(성인 5000만 원)으로, 이를 넘으면 증여 금액의 10~50%를 증여세로 내야 한다. A씨는 그동안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다가 최근 수억 원을 추징당했다.
치과의사인 C씨는 서울 강남에서 유명한 건물 부자다. 최근 C씨는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20억 원에 달하는 5층짜리 상가 건물을 증여하고, 그 아들을 부동산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임대수익을 챙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들은 증여세 6억여 원을 납부했다. 하지만 이 역시 ‘꼼수’였다. 국세청 조사 결과, 아들이 낸 6억여 원의 증여세는 결국 아버지 C씨가 준 돈으로 밝혀졌기 때문. 결국 아버지 C씨는 아들 대신 내준 증여세 6억 원조차 현금 증여로 인정돼 그에 대한 증여세를 따로 물어야 했다.
서울 강남에서 활동 중인 세무사 이종무 씨는 “증여는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 즉 수증자의 능력이 중요하다. 어린 자녀에 대한 증여가 불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세금을 내지 않거나 줄여 신고하다가 범법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자식의 아파트 담보대출금을 대신 갚아주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30대 직장인 G씨는 부동산 투기가 한창 극성을 부리던 2017년 8억 원에 아파트를 구입했다. 이중 4억 원은 은행 담보대출을 받았는데,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G씨의 어머니가 대출금을 상환했다. G씨는 아파트 취득 후 1년 만에 매매해 시세차익으로 2억 원을 번 뒤 다시 인근 재건축 아파트를 구입했다.
최근 ‘꼬마빌딩’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상가 건물을 이용한 불·편법 증여도 비일비재하다. 서울 마포에 사는 30대 최모 씨는 5년 전 대기업 임원인 친정아버지와 함께 홍대 인근에 7층짜리 상가 건물을 18억 원에 공동 구매했다. 매매대금 중 9억 원은 아버지가 대고 7억 원은 은행 대출(아버지 5억 원, 딸 2억 원)로 충당해, 정작 딸 최씨가 실제 낸 돈은 2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딸 최씨는 상가 취득 후 발생하는 임대수입의 대부분을 가져갔고 그 돈으로 3년 만에 담보 대출금을 다 갚을 수 있었다. 친정아버지가 임차료를 딸에게 대거 몰아줌으로써 우회 증여를 한 것. 현재 최씨는 자신의 초기 투자금액 2억 원도 조만간 갚을 수 있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부모 집·건물에서 돈 버는 자식들
2018년 11월 28일 국세청은 고액의 부동산·예금·주식 등을 보유하거나 부동산 임대소득을 얻고 있는 미성년자 등 세금 탈루혐의가 있는 225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뉴시스]
지난해 2월 국세청 조사에서도 상업용 건물 취득자금을 아버지가 대신 마련해준 사례가 적발됐다. 은행지점장의 아들인 E씨는 3인 공동으로 지분 투자해 강남 소재 상업용 건물을 120억 원에 취득했다. E씨의 투자금은 사실 은행지점장인 아버지가 본인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이었다. 이는 결국 현금(담보대출금) 증여와 마찬가지로 증여세 추징 대상이 된다. 더욱 황당한 건 E씨와 공동 투자한 F씨의 투자금 역시 어머니로부터 받은 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자식을 ‘조물주 위 건물주’로 만들기 위한 부모 자식 간 건물 불·편법 공동구매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서울 반포 소재 한 공인중개사는 “강남에는 부모 자식이 같은 아파트에 모여 살면서 투자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들이야 전적으로 부모 재력에 기댄 건 아니라고 항변하겠지만, 슬쩍 숟가락 하나 얹어 부모 재력을 그대로 대물림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모 명의의 아파트에 전세 혹은 월세로 들어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엄카(엄마 신용카드)’를 통한 불법 증여라고 볼 수 있는데, 매달 박씨 부부는 부모로부터 은행 대출금 90만 원을 현금으로 받는다. 매년 1080만원의 불법 현금 증여가 일어나는 셈. 외견상 박씨 남편의 월급계좌에서 은행대출금이 빠져나가지만 그만큼의 현금 지원을 부모에게 받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박씨 부부는 이사 들어오기 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집을 리모델링할 수 있었다. 당연히 리모델링 비용은 집주인인 부모가 부담했다. 말만 전세계약일 뿐, 대출금은 물론 계약 만기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부모 집에 자식이 전세 드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일반 세입자와 비교하면 엄청난 혜택을 누리는 건 맞다”고 말했다.
부모가 마련해준 전셋집, 증여세 내야
최근 국세청은 신혼집 마련 시 편법증여가 자주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해 고액 전세 거주자에 대한 자금 출처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뉴시스]
결혼할 때 신혼집을 ‘혼수’라 생각하고 부모가 아예 전세금을 대신 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러한 풍토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길 조짐이다. 최근 국세청이 고액 전세 거주자에 대한 자금 출처 조사를 강화한 것. 그동안 세금 징수가 쉽지 않았던 것은 매년 수십만 쌍의 신혼부부 자료를 당국이 일일이 추적하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최근 주택임대차등록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현행 세법상 부모에게 받은 전세금이 5000만 원을 넘으면 초과분에 대해 증여 금액에 따라 10~50%의 증여세를 내야 한다. 공제금액을 제외한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1억 원 이하는 증여 금액의 10%, 5억 원 이하 20%, 10억 원 이하 30%, 30억 이하 40%, 30억 초과 5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만약 전세자금 5억 원을 부모가 대신 냈다면 5000만 원을 제외한 4억5000만 원에 대해 8000만 원(누진공제 1000만 원 제외)의 증여세를 내야 한다. 증여받은 달 말일부터 석 달 이내에 신고를 하면 내야 할 세금의 3%를 감면해주고, 기한 내 신고하지 않아 나중에 적발되면 신고불성실에 대한 가산세가 20%, 납부불성실에 대한 가산세가 하루에 0.03%씩 붙는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그동안은 행정 시행 여력이 부족해 전수조사를 하지 못했을 뿐 과세에 대한 의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앞으로 과세 당국의 의지에 따라 전세자금에 대한 증여세 부과가 강화될 수 있는 만큼 전세금의 최소 80%는 자금 출처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부모 명의의 건물에서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경우도 증여 논란을 피하기 힘들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카페를 하는 김모 씨는 지금껏 임차료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건물주가 시아버지라 임차료를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불법이다. 원칙적으로 하자면 김씨는 인근 상가 시세와 동일하게 임차료를 내야 한다. 정당하게 임차료를 낸다 하더라도 주변 시세에 비해 낮게 책정하면 이 역시 탈세 대상이 된다. 정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인근 시세에 비해 임차료가 30% 이상 저렴하면 증여로 판단한다. 이종무 세무사는 “부모 건물에서 장사를 하더라도 나중에 증여세 철퇴를 맞지 않으려면 임차료 납부 근거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야한다”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