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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채용 면접… “미세한 눈동자 떨림도 평가 대상이라 숨 막혀”

입력 | 2019-02-06 11:10:00

● 근육 움직임, 안색, 생체 신호, 음색도 측정
● 87개 기업 도입… 화상대화 방식
● “툭하면 서버 멈추고 중간에 꺼지기도”
● 채용 비용 절감에 도움 돼
● “기계에 평가당하니 자괴감 들어”







BnK부산은행에 지원한 A(여·27) 씨는 지난해 10월 인공지능(AI) 면접을 봤다. A씨는 스터디 카페 1인실을 예약해 면접을 치렀다. 상의는 블라우스에 정장 재킷을 입어 격식을 갖추고 하의는 편한 치마를 입었다. 카메라가 달린 노트북과 마이크가 내장된 이어폰을 준비했다. 짧은 시간에 답변을 선택하는 문제도 있는 터라 마우스도 챙겨 왔다.

노트북 앞에 앉아 인사팀이 알려준 링크를 눌러 면접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면접을 시작하자 20대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계음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사람 목소리와 비슷했다. 목소리가 잘 녹음되는지 마이크를 점검했다. 얼굴 정면이 잘 나오게 카메라 각도를 조절했다. A씨는 “내 모습이 전부 녹화된다고 생각하니 면접을 보는 내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했다.

AI 면접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채용 비리 사건 등으로 논란이 이는 가운데 면접 과정에서 객관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AI가 과연 인성과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인간 개입 없이 알고리즘이 평가


AI 면접이라고 하면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처럼 면접장에서 AI를 상대로 답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마련이나 실제 AI 면접은 지원자가 카메라와 마이크가 달린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에 뜨는 질문을 보고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카메라를 통해 지원자의 모습이 촬영되고, 마이크를 통해 목소리가 녹음되는 것이다.

지원자는 회사가 지정한 면접 기한 내에서 장소와 시간에 구애하지 않고 자유롭게 면접을 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진행하는 AI 면접 방법은 동일하다. IT 솔루션 기업 마이다스아이티가 개발한 ‘인에어(inAIR)’가 아직까지 AI 면접 시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팜스코에 지원한 B(27) 씨는 지난해 11월 AI 면접을 봤다. 1시간 동안 기본 질문, 탐색 질문, 상황 질문, 뇌과학 게임, 심층구조화 질문에 답해야 했다. 기본 질문 단계에서는 자기소개, 회사 및 직무 지원 동기, 성격 장단점을 물어본다. 탐색 질문은 ‘매우 그렇다’부터 ‘전혀 아니다’까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답변을 선택하는 것으로 인·적성 평가와 형식이 비슷하다.

상황 질문에서는 “소개팅에 나왔는데 지갑을 두고 왔다. 상대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가”와 같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물어보는 문제가 나왔다. 뇌과학 게임은 “제한시간 내에 무거운 순서대로 공을 나열하시오”처럼 판단력과 순발력을 요구했다. 심층구조화 질문은 “경쟁 상황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나?” “후배가 자신보다 높은 인정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나?” 등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B씨는 “1시간 동안 카메라만 보면서 대답하니 답답하고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뇌신경과학 적용

AI 면접에 대한 취업준비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A씨는 “대면 면접은 지원자의 이미지를 많이 보는데, AI 면접은 직무역량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아 좋았다”고 했다. 그는 “최종면접까지 올라가곤 했던 친구들이 AI 면접에서 떨어진 것을 봤다”며 “직무 중심의 키워드를 잘 사용해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A씨와 달리 AI 면접에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공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취업준비생도 있다. B씨는 “면접이란 게 지원자와 회사가 서로 알아가는 과정인데 이런 것 없이 카메라만 보면서 대답해야 하니 어색하고 불편했다”고 토로했다.

도레이첨단소재에 지원한 C(26) 씨는 “AI 면접이 내 인생의 첫 면접이었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면접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까지 들었다”고 했다. D(30) 씨는 “AI는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직무 적합성을 평가한다고 들었다”며 “기존 데이터가 임의로 조작되거나 편향되면 결과도 편향될 수 있어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AI 면접 솔루션 인에어를 제작한 마이다스아이티 관계자는 “뇌신경과학을 바탕으로 지원자를 객관적이고 심층적으로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인에어는 지원자의 얼굴 근육 움직임, 안면 색상, 답변 속도, 음색과 음 높이, 생체 신호, 뇌의 역량을 측정한다. 측정 결과를 역량, 조직적합도, 호감도 등 총 28개 부문으로 세분화해 분석하고, 서비스·경영지원·생산관리·디자인·연구/개발·엔지니어·생산직·영업/마케팅 등 8개 직군에 대한 적합도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지원자가 직무에 얼마나 적합한지 △우수 △보통 △미흡 등 3단계 등급으로 나눠 점수를 매긴다. 점수는 인간의 개입 없이 알고리즘을 통해 산출된다. 점수가 산출된 이후 면접관이 녹화된 지원자의 모습을 보며 왜 이런 점수를 받았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취준생 선호 기업이 주로 도입

경남 김해 인제대는 최근 기업 채용 트렌드에 맞춰 인공지능(AI) 기반의 온라인 모의 면접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취업준비생이 선호하는 공기업, 대기업, 금융계를 중심으로 AI 면접을 활용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롯데 등 대기업, 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정보화진흥원·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등 공기업, KB국민은행·하나은행 등 금융회사, 한미약품 등 제약회사를 비롯해 1월 현재 87개 기업에서 AI 면접을 시행하고 있다.

마이다스아이티 관계자는 “AI 면접 프로그램을 지난해 3월 7일 출시했다”며 “하반기부터 AI 면접을 도입하는 회사가 늘기 시작했다”고 했다.

AI 면접을 도입한 기업들은 기계가 사람을 면접하는 것의 한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AI 면접이 아직은 대면 면접을 전면적으로 대체한 게 아니라 대면 면접 전 단계에서 시행되는 이유다. AI 면접은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사이에 치러지거나 필기시험을 대체하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JW중외제약은 지난해 5월 오프라인 시험으로 진행하던 인·적성 검사를 AI 면접으로 대체했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채용 과정에서 주관적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고 효율성을 높이고자 AI 면접을 도입했다”면서 “오프라인으로 진행 시 필요한 장소 섭외나 시험지 프린트 등 제반 절차 비용을 절약했으며 인·적성 시험 분석 등 기존 채용 과정에서 소요된 시간도 50%가량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블라인드 채용은 지원자의 출신지, 가족관계, 학력 등의 항목 없이 직무능력만으로 인재를 뽑는 방식이다. “지원자의 어떤 점을 보고 평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블라인드 채용에 난색을 보이는 기업이 많다.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는 기업 중 일부는 AI 면접을 도입해 블라인드 채용의 문제점을 보완한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직원을 뽑는 한국정보화진흥원은 필기시험 전 AI 면접을 시행한다. 2017년에는 서류전형 합격자 전원이 필기시험을 봤다면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AI 면접 합격자만 필기시험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관계자는 “블라인드 채용을 하면서 지원자와 면접관 사이의 정보 비대칭이 심해졌다”면서 “실무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대면 면접에서 면접관들이 AI 면접 결과를 바탕으로 개별 질문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AI 면접을 진행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으나 지원자들은 예기치 않은 문제나 시스템 결함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만을 제기한다. 집에서 AI 면접을 보다가 반려견이 짖는 소리가 커서 지원자의 답변이 묻히는 일도 발생했다. 같은 시간에 많은 사람이 면접을 보면 서버가 불안정해져 면접이 일시 중단되거나 완전히 종료되는 경우도 있었다. 무선 인터넷(WIFI)을 연결해 면접을 보다가 연결이 끊겨 강제로 중단된 사례도 있다.

반려견 짖는 소리도 녹음돼

마이다스아이티에 지원한 F(26) 씨는 뇌과학 게임을 진행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고 했다. F씨는 “문제가 너무 어려워 표정 관리가 안 됐다”며 “짧은 시간에 답을 고르는 문제 유형에서도 내 모습이 촬영되고 목소리가 녹음되기에 표정이나 음색마저 평가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고 밝혔다.

한미약품과 일동제약에 지원한 E(23) 씨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서 AI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한이 3일밖에 되지 않아 조용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E씨는 “방문을 닫고 면접을 봤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엄마가 갑자기 들어왔다”며 “이 장면이 카메라에 찍혔는데 그래서 떨어진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AI 면접을 보는 중간에 서버 문제로 면접 프로그램이 꺼져 당황한 적도 있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니 꺼진 부분부터 면접을 다시 볼 수 있었다”면서 “너무 당황한 나머지 페이스를 잃고 면접을 망쳤다”고 덧붙였다.

C씨는 노트북 고장으로 진땀을 뺐다. AI 면접은 마이크를 통해 인식된 지원자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평가하는데, 노트북 마이크가 고장 나 면접을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거리에 친누나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 누나의 노트북을 빌려 면접을 봤다. 그는 “누나의 노트북도 처음에는 마이크 감도가 좋지 않다는 문구가 떴다. 한동안 면접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내내 신경이 곤두섰다”고 회고했다.

AI 면접 확대는 세계적 현상이다. 영국에서는 AI 면접에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액 과외도 등장했다. 런던에 있는 피니토라는 회사는 지원자가 회사에 채용될 때까지 AI 면접을 도와주는 대가로 900파운드(약 1300만 원)를 받는다. 취업준비생들이 AI 면접에 합격하고자 고액 과외까지 받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피니토와 유사한 업체가 출현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취업준비생들은 아직은 ‘사교육’ 없이 AI 면접 후기를 찾아보거나 준비생들끼리 ‘족보’를 공유하며 면접을 대비한다. AI 면접 후기는 네이버 카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네이버 카페 ‘독취사’에는 AI 면접 관련 글이 300개 이상 올라와 있다. 면접 후기를 공유하는 글부터 면접 복장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난이도는 어떤지, 마이크 성능은 어떻게 체크하는지 등 문의 글이 많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의 ‘ai 면접 준비방’은 정보 공유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이 채팅방에는 뇌과학 게임 공략법, AI 면접을 체험해볼 수 있는 앱을 소개하는 게시글이 올라와 있다. 취업준비생들은 뇌과학 게임과 풀이법이 유사한 게임의 공략법이 소개된 블로그나 유튜브 링크를 공유하고 직접 체험하면서 노하우를 익힌다.

정보라 인턴기자 tototobi@naver.com

<이 기사는 신동아 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