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이수미
연극 ‘자기 앞의 생’에서 로자 역을 맡은 배우 이수미가 1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연습실 앞 벤치에 앉았다. 그는 “로자 역을 함께 맡은 양희경 선배로부터 연습실에서 많은 걸 배우며 동고동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0년 넘게 무대에서 갖가지 배역을 맡아 온 그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왜 넌 무대에 올라왔다가 금세 또 사라지냐”는 우스갯소리를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선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지키는 핵심 배역이다. 그는 “‘자기 앞의 생’ 제의를 받았을 때 국내 초연이라는 부담감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은 덥석 붙잡았다”며 “제가 맡은 역할이 크든 작든 무대 위에선 모든 게 다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그가 연기할 로자 할머니는 극 중 창녀 출신에 폴란드에서 온 이민자다. 또 유대인인 데다 파리 빈민가에 살며 소수자로 낙인이 찍힌 존재다. 살면서 믿었던 연인에게 배신당하는 아픔도 있지만, 어린 아랍인 소년 모모와 다른 소수자들의 아픔까지도 어루만지는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로자에게서 자본주의 사회 속 연극인으로 소외된 채 지내 온 나 자신을 발견했다”며 “관객도 세대, 종교, 인종을 뛰어넘어 로자라는 한 인간과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는 경험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그에게 올해 1월 제55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수상은 다시금 무대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는 촉매제가 됐다. 늘 동료들을 축하해주기만 하고 아쉬움을 묻어둬야 했던 그는 “상을 목표로 연기했던 건 아니지만, 순수예술에 대한 헌신을 인정받는 것 같아 행복했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그는 최근 수상 이후엔 처음 무대에 올랐던 순간도 자주 떠올린다.
“20년 전엔 연극한다고 하면 ‘우와! 연극하세요?’라며 신기해했는데, 요즘엔 ‘아이고, 연극해? 너도 힘들겠다’는 동정 어린 대답을 들어요. 근데 전 요즘 같은 반응을 들을 때가 더 좋아요. 관객과 배우라는 게 각자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 대 인간으로 객석과 무대에서 만날 때 서로의 모습에 더 쉽게 공감하지 않을까요?”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