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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박보검과 송혜교가 나오는 드라마 ‘남자친구’에 빠져있다. 두 사람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감정이입이 잘 안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내는 오로지 박보검만 집중해서 보기 때문에 감정이입 따위는 상관없다고 했다. 드라마 초반에 송혜교가 박보검을 처음 보고 “누굴까? 청포도같다”라고 말하는데 아내는 그 대사를 듣고 감정이입이 됐는지 “아, 너무 설레”라며 탄성을 터뜨렸다. 나는 괜히 약이 올라서 아내에게 물었다.
“그럼 나는 뭐같아?”
“음… 곶감.”
“저는 곶감 인데, 얘는 뭐 같아요?”
“음… 먹태요.”
생태도 아니고, 동태도 아니고, 먹태라니. 제수씨는 농담이라고 했지만 친구의 얼굴은 이미 먹태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그날따라 유난히 푸석푸석해 보였다. 곶감은 그래도 쫀득함이라는 최소한의 수분을 가지고 있는데, 먹태는 그냥 부서지면 가루일 뿐. 나는 그냥 곶감에 만족하기로 했다.
아내가 ‘남자친구’라는 드라마에 빠져 있다면, 5학년이 되는 딸은 ‘에이틴’이라는 웹드라마에 빠져있다. 요즘 아이들은 드라마도 유튜브나 네이버TV로 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웹드라마가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사랑이라고 하기엔 좀 어설프지만, 청포도같은 첫사랑 이야기가 10대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았다.
‘청포도’와 ‘곶감’ 이야기가 어쩌다가 웹 드라마와 TV 드라마로 흘러왔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청포도와 웹드라마의 시대인 건 확실하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알아야 한다. 곶감도 한 때는 딱딱하고 떫은 감이었고, 홍시를 거치고 세월을 견뎌 곶감이 됐다는 사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