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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윤승옥]콧대 높은 주류 골프가 ‘낚시 스윙’에 열광한 까닭

입력 | 2019-02-08 03:00:00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주류의 관점에서 볼 때, 최호성(46)은 확실히 이단이다. 그의 스윙은 골프계가 600년 동안 고수해 온 스윙의 정석을 모조리 부정한다. 공을 치고 나서 오른쪽 다리를 들고, 그것도 모자라 한 바퀴 돌기도 한다. 허리도 뒤로 거의 90도 꺾는다. 교본에서 하지 말라는 건 다 한다. 골프스윙이 아니라 봉산탈춤에 가깝다. 낚싯대를 잡아채는 동작 같다고 해서 ‘낚시꾼 스윙’이라고도 불린다. 정통 스윙을 신봉하는 전문가들은 ‘미친 스윙’이라고 혹평했다.

그런 최호성은 지금 골프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에 초청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 언론은 아이돌스타인 것처럼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뉴스로 만들어 내고 있다.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 조던 스피스 등 세계적인 골프 스타들도 그의 스윙을 품평하며 신드롬에 동참했다.

PGA의 변방인 한국. 그 변방에서도 비주류인 최호성에게 세계 골프계가 왜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독특한 스윙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때문일까.

분명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우선 최호성의 스윙은 독특한 ‘인생역전’의 스토리와 연결된다. 미국 사회, 특히 스포츠계는 ‘Rags to Riches(넝마에서 부자로)’ 이야기에 환호한다. 최호성은 고교(포항 수산고) 시절 참치 해체 실습을 하다 오른손 엄지가 절단된다. 어려운 형편에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25세 때, 독학으로 골프를 배운다.

늦게 시작해 유연성이 부족했다. 딱딱한 몸으로 비거리를 늘리려다 보니 스윙이 거칠고, 커졌다. 미세하게 샷의 방향과 힘을 조절해주는 엄지손가락마저 없었다. 그래서 손가락 대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공의 방향을 잡아 나갔다. 그런 금기의 스윙으로 지난해 일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나이 45세. 남들은 감독 자리 알아볼 나이였다.

그의 스윙은 억눌린 골퍼들을 해방시켰다. 골프는 고지식하고 벽이 높다. 규정은 복잡하고, 복장과 매너에 대해서도 까다롭다. 필요한 것도 있지만, 지나친 부분도 많다. 특히 스윙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교과서 스윙이라는 이름 아래 ‘붕어빵 스윙’을 강요한다. 투어 골퍼들의 스윙처럼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그런데 현실이 어디 그런가. 웬만해서는 그런 폼은 나오지 않는다. 타이거 우즈의 폼은 타이거 우즈만 가능하다. 안 될수록 강박은 더 커진다.

최호성은 이런 골퍼들에게 용기를 줬다. 공을 치는 지점, 즉 임팩트 구간에서만 정확한 스윙을 하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미국투어의 남녀 선수들 사이에 최호성 흉내 내기가 유행이 됐다. 수많은 미국 팬이 그의 스윙 영상을 보면서 밤잠을 설치고 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남상우 박사는 “예쁜 스윙 강박에 억눌려 온 골퍼들이 그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제, 많은 골퍼가 자유와 자존감을 얻게 됐다. 최호성은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골프 스윙도 다 다르다”는 말을 전했다.

최호성의 인생역전 스토리는 팬들을 울리고, 그의 독특한 스윙은 팬들을 활짝 웃게 한다. 골프 대중화에 운명을 걸고 있는 PGA가 무명 최호성에게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흙 속의 진주였다. 골프 팬들도 이제 그의 활약을 주시하며 울고, 웃을 것이다. 최호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최호성 신드롬은 그래서 이제 시작이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