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정책 ‘손바닥 뒤집기’

올 세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일감 몰아주기 예외조항이 삭제된 것은 지난달 8일 입법예고 직후부터 공정거래위원회가 반대 의사를 강력하게 표시했기 때문이다. 당초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기획재정부는 공정위와의 사전 논의를 건너뛴 채 예외조항을 시행령 개정안에 넣었다.
공정위 소관인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기술적 특성상 전후방 연관관계에 있는 계열회사 간의 거래로 해당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부품 소재 등을 공급 또는 구매하는 경우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로 보지 않는 예외조항이 있다. 기재부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주무 부처 격인 공정위도 예외를 두는 만큼 기재부 소관인 세법에 예외를 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가 매출액 기준만 넘으면 무조건 적용하도록 돼 있어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했다.
일각에선 대기업 규제에 ‘올인’하고 있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만으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기재부가 세법을 통한 규제 완화로 방향을 틀자 펄쩍 뛰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2016년 공정위는 한진그룹이 일감 몰아주기로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고 보고 과징금 14억3000만 원을 부과했지만 이듬해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기재부 역시 규제 완화와 관련해 관계 부처를 설득하는 단계를 건너뛴 채 ‘아니면 말고’식으로 대응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부의 무책임한 모습에 그동안 정책 전환을 기대했던 경제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 대상에서 제외한 특허 보유 관계사와의 거래가 세법에서는 과세 대상으로 남아있는 건 같은 행위에 대해 두 법률이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기형적인 형태”라고 지적했다.
부처 간 엇박자에 이 정부에서 누가 규제 완화 등 경제 정책 전반의 키를 쥐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각 부처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에 다른 해석을 갖고 접근하다 보니 이 같은 혼란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