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댓글 조작 1심 판결 보며, 안철수 “MB 아바타” 격앙 떠올라 자신들은 깨끗하다는 착각으로 前정권·비판세력에 가혹한 잣대 내편 네편 나뉜 강퍅한 나라… 일 잘하는 정부가 긴요한 때
박제균 논설주간
그러다 4월 둘째 주인 13일에 시작된 TV 토론을 계기로 상승세가 꺾여 셋째 주부터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4월 23일 열린 3차 TV 토론에서 안 후보가 “내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냐”고 문 후보에게 따질 때, 이미 승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뒤였다. TV를 본 많은 사람들은 안 후보가 왜 뜬금없이 그걸 물고 늘어져 자충수를 뒀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 MB 아바타가 아니라고 목청을 높이면 외려 MB 아바타로 각인되는, 정치 선전술의 기본도 모른다면서.
하지만 이번 김 지사 판결을 보면서 안 후보 입장에선 뜬금없는 문제 제기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안 후보는 자신의 지지율 급락 원인이 인터넷에 창궐한 ‘MB 아바타’ 등 부정 여론 탓이란 생각에 꽂혀 헤어나지 못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심 판결에서 드러난 댓글 조작 혐의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6년 12월∼2018년 3월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의 기사 약 8만 개에 댓글 8840만여 건을 조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확정 판결에서는 국정원 직원들이 391개의 트위터 계정으로 29만5636차례에 걸쳐 글을 올리거나 리트윗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2124회 댓글을 단 것으로 나왔다. 국가기관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국정원 사건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볼 수 있지만, 수법으로 치면 정부 아마추어들의 수공업 생산과 민간 프로들의 기계공업 대량생산에 비교될 정도다.
아직 댓글 조작 문제는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문재인 정권은 태생부터 순수하다느니,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느니 하는 착각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국민 대다수가 그렇게 보지 않음에도 여권 핵심부가 그런 착각을 고수하고, 심지어 강요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유난히 ‘내로남불’ 얘기가 많이 들리는 것도 고고한 척은 다 해놓고 뒤로는 이전 정권의 구태(舊態)를 답습하거나 한술 더 뜨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 1년 9개월 동안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급이 벌써 8명이다. 박근혜 정부 4년 2개월 임기 동안 10명이었던 것에 비해도 과속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앙선관위의 선거관리 실무를 총괄하는 상임위원의 임명을 강행한 것은 대통령이 무엇보다 지켜야 할 선거 중립과 관련해 두고두고 불씨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정치적 중립을 우습게 아는 여권 내 분위기가 김경수 판결이 마음에 안 든다고 사법부를 협박하며 헌법상 권력분립을 흔드는 위험한 질주로 이어지는 것이다.
착각은 자유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들만 깨끗하다, 아니 DNA 자체가 다르다는 착각을 이전 정권 관여자나 현 정부 비판 세력을 ‘적폐’로 몰아 가혹하게 다루는 잣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문제가 크다. 착각 속에서 자신과 남에게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내로남불 아니고 뭔가.
국민은 깨끗한 정부를 원한다. 그러나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는 이 엄혹한 시기에 국민이 더욱 필요로 하는 건 일 잘하는 정부다. 시장경제를 흔들고 안보 불안을 부추겨 민생을 고단하게 하면서도 ‘우리는 태생부터 다르니 괜찮다’는 선민의식에 빠진 정부가 아니다. 집권세력의 그런 착각과 선민의식이야말로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나누고, 대한민국을 전직 대통령 2명에 대법원장 출신까지 감옥에 가두는 강퍅한 나라로 몰아간다. 집권 2년이 다 돼 가는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착각의 덫에서 빠져나올 때가 됐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