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덕 센터장 눈물의 영결식
10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연구동 9층에서 열린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영결식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지은 지 49년 된 낡은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좁아 조문객 절반은 걸어서 올라와야 했다. 윤 센터장의 지긋이 웃는 영정 사진이 마치 가족과 동료들이 헌화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0일 오전 9시 35분경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영결식이 열린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대강당. 윤 센터장의 장남인 형찬 씨(23)가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 등에 이어 추도사를 했다. 윤 씨는 슬픔을 억누르며 차분히 추모사를 읽어 나갔다.
“아버지는 제게 ‘넌 나랑 신기하게 엄청 닮았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랑 가장 닮은 사람이기에 말씀하시지 않아도 가족에게 늘 미안함을 가지고 계신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미안해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 낡은 집무실 앞에는 주인 없는 커피만
응급의료 일선에서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은 고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그저 황망한 표정들이었다. 윤순영 중앙응급의료센터 재난응급의료상황실장은 “오늘 장례가 끝나면 센터장님이 제게 ‘고생 많았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자’고 하실 것만 같다”며 울먹였다. 간신히 슬픔을 억누르고 있던 다른 동료들도 흐느끼기 시작했다. 윤 실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겠지만 당신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열악한 국내 응급의료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의 영정 사진과 위패는 마지막으로 그의 집무실에 들렀다. 한눈에 봐도 낡아 보이는 2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윤 센터장은 이곳에서 일주일에 하루를 빼고는 허름한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밤을 지새웠다. 영정 사진을 뒤따른 유가족은 집무실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동료들과 유가족의 묵념도 이어졌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60년 된 낡은 건물, 4평 남짓한 집무실 안에서 수년간 쌓아온 당신의 시간을 우리는 미처 잡아주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집무실 현관문 앞에는 국화꽃과 아메리카노 커피 6잔, 전자담배가 놓여 있었다. 고인이 평소 커피믹스를 입에 달고 살았던 탓에 동료들은 “건강에 안 좋다”며 아메리카노를 드시라고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 “국가와 사회에 헌신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고인은 낮 12시에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 도착했다. 12시 50분경 관이 화장장으로 들어가자 장남 형찬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윤 센터장의 어머니는 오열하다 끝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119구급대원이 긴급 출동해 어머니를 안정시켜야 했다.
화장장에 동행한 허탁 전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고인은 5남매 중 장남으로, 집안의 자랑거리였다”며 “생전 자신이 의사인데도 부모님의 건강을 직접 챙기지 못해 늘 미안해했다”고 회고했다. 허 교수는 윤 센터장과 전남대 응급의학과 동기다. 고인보다 4년 선배지만, 군 복무로 인해 고인과 응급의학과 수련의 과정을 함께 밟았다. 허 교수는 수련의 시절 일화를 사람들에게 들려줬다.
“오랫동안 방치돼 팔에 구더기가 생길 정도로 괴사가 심각했던 환자가 실려 왔어요. 그러자 한덕이가 직접 몇 시간에 걸쳐 수백 마리의 구더기를 핀셋으로 일일이 꺼내더군요. 꼿꼿한 선비 같은 후배였고, 지독할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고양=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