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재미공작소에서 강독회와 워크숍이 열린 모습. 재미공작소 제공
특수용접, 레이저절단, 설비, 인쇄…. 대로변의 다양한 간판들 사이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기자가 찾아간 복합문화공간 ‘재미공작소’는 간판조차 없었다. 더구나 건물 1층의 27㎡(약 8평)쯤 되는 네모난 공간이 이곳의 전부였다.
그러나 뜯어볼수록 개성과 내공이 느껴졌다. 일단 여기서만 살 수 있는 책과 음반들이 꽤 있다. 인디 음악가 ‘아마츄어 증폭기’의 재미공작소 공연 실황 앨범, 그림동화 ‘대륙의 시작’과 음악가 인터뷰집 ‘우리들의 황금시대 1, 2권’….
카페나 서점은 아니다. “카페나 서점을 하고 싶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이세미 이재림 공동대표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두 사람은 중앙대 영화학과 선후배 사이. 유학 시절 스쿼트(squat·예술 공간 점유) 같은 급진적 운동에 영감을 받아 한국 실정에 맞는 문화공간을 상상하다 의기투합하게 됐다. 재미공작소란 이름은 두 사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고, 말 그대로 뭐든지 재미있는 일을 벌여보자는 뜻도 있다.
작은 정육면체 공간은 그때그때 변신한다. 음악 공연, 미술 전시, 작가와 독자가 함께하는 강독회, 글이나 그림을 배워보는 워크숍이 번갈아 가며 열린다. 참여하려면 소정의 참가비를 내고 미리 신청하면 된다. 객석을 채우는 이들은 주로 20, 30대다.
16일에는 최준혁 만화가가 그동안 그린 만화와 관련 액자, 포스터, 스티커를 파는 팝업 숍을 연다. 22일에는 이소호 시인의 강독회가 있다. 28일부터는 황로우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배우는 5주 코스의 그림 워크숍 ‘기묘 세계’를 연다.
기자가 찾아간 날 밤에는 인디 음악가 ‘단편선’과 듀오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의 콘서트가 열렸다. 좋아하는 가수와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오순도순 소통하는 재미는 전문공연장에서는 찾기 힘든 매력.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청년들이라면 재미공작소의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면밀히 ‘팔로우’할 만하다.
지금은 프로그램이 알차다는 평을 듣지만 재미공작소의 시작은 미약했다. 공동 작업 공간을 표방하며 2011년 마포구 상수동에 야심 차게 문을 열었지만 운영이 쉽지 않았다. 2013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뒤 문화행사에 초점을 맞췄다. 1년에 한두 권씩 출판도 하는 이곳은 한국 음악계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씬의 아이들’이라는 새 책도 기획 중이다.
재미공작소가 벌이는 일들은 경제적으로 큰 재미를 볼 수 있는 ‘사업’은 아니다. 다만 두 대표의 밝은 말과 웃음에 설립 이념이 담겨 있다.
“문화예술과 관련해 재미있는 거라면 다 하고 싶습니다!”
임희윤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