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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걸크러시]〈21〉왜장의 장막에 비수를 겨누다

입력 | 2019-02-12 03:00:00


“왜장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계월향은 김응서를 인도하여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 전체가 붉은색인 왜장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걸상에 앉아서 자고 있었는데, 쌍검을 쥐고 있어 금방이라도 사람을 내리칠 것 같았다. 김응서가 칼을 빼어 왜장의 머리를 베었다. 머리가 이미 땅에 떨어졌는데도 왜장은 쌍검을 던졌다. 하나는 벽에 꽂히고 하나는 기둥에 꽂혔는데 칼날이 반이나 들어갔다.”

―이긍익 ‘연려실기술 평양지’ 중



김응서는 김경서(金景瑞·1564∼1624)의 아이 때 이름이다. 김응서는 1593년 명나라 장군 이여송과 함께 평양성을 탈환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응서가 왜장의 목을 베었다는 것은 그 성공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장(副將)이었던 왜장은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용맹함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 계월향이라는 인물이 개입했다. 장막까지 데리고 간 계월향이 없었다면 김응서는 왜장의 머리를 벨 수 없었을 것이다. 계월향은 평양의 기생이었는데 아마도 전쟁 중에 왜장에게 잡힌 듯하다. 그 후 계월향은 도망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반면 왜장은 계월향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다. 왜장은 평양성 서문으로 가서 친척들의 안부를 알아보겠다는 계월향의 부탁까지 허락한다. 이로써 계월향과 김응서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계월향이 성 위에 올라 슬피 외쳤다. “오빠! 어디에 있어요?” 여러 번 외치자 김응서가 답하고 나갔다. 계월향이 말했다. “만약 나를 탈출시켜 준다면 죽음으로라도 은혜를 갚겠습니다.” 김응서가 허락하고 스스로 계월향의 친오빠라며 평양성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에서는 계월향과 김응서가 어떤 관계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쨌든 계월향은 위험을 무릅쓰고 김응서를 평양성 안으로 들였다. 조건은 탈출이었다. “죽음으로라도 은혜를 갚겠다”는 한마디는 계월향이 왜장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소망이 강렬했음을 보여준다. 기생이지만 조선의 여인으로 왜장의 시중을 드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었던 것이다.

김응서가 왜장의 머리를 가지고 문을 나서자 계월향이 뒤따랐다. 김응서는 두 사람이 모두 살아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칼로 계월향을 베고 성을 넘어 돌아왔다. 이튿날 새벽 왜적들이 왜장의 죽음을 알고 크게 놀라 동요하며 사기를 잃었다.

실망스러운 결말이다. 김응서는 탈출시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조선의 민중들도 왜 계월향이 죽어야만 했는지 궁금했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설화적 색채가 강화된 임진록에서는 이본(異本)에 따라 ‘나를 죽이지 않으면 왜장의 혼이 자기를 꾀어 조선을 어지럽힐 것이니 죽이라’고 계월향이 요구했다거나, 김응서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았지만 결국 추격하는 왜적이 계월향을 죽였다고 하는 등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계월향은 조선시대에는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아마 왜장의 사랑을 받으며 일정 기간 같이 지냈다는 부정적 인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공적에 대하여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계월향이 안타까울 뿐이다.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