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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함-기발함은 한 끗 차이… 뻔하게 안 쓰려고 애써”

입력 | 2019-02-12 03:00:00

영화 ‘극한직업’ ‘완벽한 타인’ 연달아 흥행 성공한 배세영 작가
심각한 상황서 허 찌르는 대사 혼자 연기하며 재미있는지 점검
“왕갈비 실컷 먹을 수 있어 행복”




코미디 영화 열풍을 타고 개봉 15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위 사진)과 지난해 흥행한 ‘완벽한 타인’은 배세영 작가의 작품이다. 두 영화 모두 캐릭터의 특성을 살린 차진 대사들이 일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CJ엔터테인먼트·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영화 ‘극한직업’에 나오는 이 맛깔나는 대사는 배세영 작가(44)의 배고픔에서 시작됐다. 2016년 10월 경기 수원시 작업실에서 시나리오를 쓰던 그는 동네에서 유명한 왕갈비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치킨과 엮었다. 개봉 18일 만에 1200만 명 관객을 돌파한 지금, 온라인에서 왕갈비통닭은 누리꾼들이 레시피를 공유하는 ‘핫’한 음식이다.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배 작가는 “작품이 잘돼서 왕갈비와 치킨을 실컷 먹고 싶었는데, 행복하다”며 웃었다.

심각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대사로 허를 찌르는 게 그의 장기. 실적 부진으로 마약반 해체를 논하는 경찰서장 앞에서 “수원왕갈비 통닭입니다”라며 태연하게 전화를 받는 고 반장(류승룡)의 대사에 관객들은 무너졌다. 그는 “형사와 치킨집 사장의 경계를 넘나드는 설정이 핵심이었다”고 했다.

배세영 작가는 뼛속까지 ‘코미디 작가’다. 그는 “원래 성격이 정색하면서 말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글을 쓸 때도 코미디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유치함과 기발함은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해요. 수위를 지키기 위한 완급 조절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대사를 쓸 때마다 뻔함을 깨기 위한 고민을 해요.”

배 작가는 지난해 520만 명 관객을 동원한 ‘완벽한 타인’도 집필했다. 그의 말대로, 두 작품 모두 “‘말맛’에서 오는 재미를 살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집과 치킨가게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캐릭터의 대사로 승부하는 점도 닮았다. ‘극한직업’에선 영화 말미 격투 장면의 반전을 위해 초반엔 형사 5인조의 ‘찌질함’을 부각했다. 그는 “사건보다 사람에게 끌리는 편”이라며 “형사들을 주·조연 없이 동등하게 놓고 ‘어벤져스’를 생각하며 썼다”고 했다.

그는 항상 일상에서 ‘있을 법한’ 소재들을 떠올린다. ‘극한직업’에선 정직을 당한 고 반장에게 바가지를 긁으며 “치킨집만 아니면 된다”는 아내 캐릭터를 추가했다. ‘완벽한 타인’에선 ‘앞뒤가 다른’ 특성을 지닌 캐릭터들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배 작가는 코미디 특성상 셀프 연기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쓴다고 한다. 그는 “직접 말했을 때 재미없는 대사들은 집필 과정에서 다 쳐내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물론 감독과의 ‘케미’도 중요하다.

“시나리오에서 고 반장은 그저 ‘버티기에 능한’ 캐릭터였어요. 이 지점에서 이병헌 감독님이 맞아도 버티는 ‘좀비’를 떠올리셨더라고요. 연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올해 13년차 작가인 그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극한직업’ 집필을 위해 한 달 동안 집을 비웠던 그는 미안한 마음에 아이들 이름을 작품마다 넣고 있다. “tvN ‘SNL 코리아’에서 했던 ‘여의도 텔레토비’처럼 정치 풍자 코미디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극한직업’을 쓸 때 가졌던 “언젠간 코미디 영화의 시대가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뭣보다 두 영화의 연이은 흥행으로 시나리오의 중요성이 부각된 점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시나리오가 영화의 부속품 정도로 여겨졌던 때도 있었죠. 요즘은 투자자들이 작가를 찾기 시작하는 등 업계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관객의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사실에 언제나 감사함을 느낍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