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공모하는 연구 주제를 보니 매우 구체적이었다. 이름도 어려운 ‘알칼라인 수전해(물 전기분해)’, ‘고분자전해질 수전해’, ‘액상유기화합물 수소저장’ 등 세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단을 하나씩 지원한다고 한다. 그 외에 ‘태양광으로 물을 분해해 수소 생산을 하는 수소충전소’도 독립 주제로 따로 과제를 냈고, 나머지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안’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디어를 공모 받는다고 돼 있다.
주요 과제 몇 가지를 거의 세부과제 수준으로 자세히 공고하고 있어 의아했다. 수소 생산과 저장은 세계적으로도 아직 제대로 된 후보 기술이 없어 ‘미래기술’로까지 불리지 않던가.
지난달 로드맵이 발표된 직후 일부 과학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 정도 큰 계획을 세웠으면 실현할 기술에 대한 근거가 있지 않겠느냐. 보고서든 문서든 보여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는 한 과학자는 “돌아온 건 허술한 내용의 보고서 몇 장이었다”고 말했다. 기술적 검토가 불충분해서인지, 수소경제 로드맵은 지금도 곳곳에서 실현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뭔가 급한 느낌이다. 기술로 사회와 경제의 골격을 바꾸겠다는 구상인 만큼, 기술을 충분히 검토하는 과정이 먼저 있었어야 한다. 그 이유를 짐작하다 로드맵 발표 보도자료 마지막에 시선이 갔다. ‘2040년에는 연간 43조 원의 부가가치와 42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신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혹시 일자리 창출에 대한 강박이 일을 서두르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전자제품’에 가까운 전기차와 달리, 수소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해 기존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는 자동차 전문가의 말도 어른거렸다.
수소만이 아니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하는 각종 사업 자료를 보면 ‘일자리 창출’이 상투어처럼 붙는다. 일자리가 중요하고, 과학기술계가 그 마중물 역할을 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다. 다만 본말을 뒤집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과학기술계는 조금 느긋하게, 중요한 사회 변화를 이끄는 토대로 남아 있으면 안 될까.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