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한 달가량 앞둔 지난해 7월 한 대학 동기가 연락을 해왔다. 오랜만의 연락에 반가움도 잠시,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시간 돼?” 하는 친구의 인사말 뒤에 이어진 건 예상치 못한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아이가 많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비교적 일찍 결혼한 친구는 벌써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있었다. 첫째는 아들, 둘째는 딸, 번듯한 직장에 사랑하는 부인까지, 누가 봐도 부러워 할 다복한 가정이었다. 메신저 속 프로필 사진에서 활짝 웃고 있는 막내딸은 이제 막 돌을 넘겼다고 했다.
한데 그 갓난아기에게 상상치도 못한 불행이 닥쳤다. 어느 날 아이의 심장이 돌연 멈춘 것이다. 헐레벌떡 달려간 응급실에서 심폐소생 후 받은 진단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특발성 확장성 심근증.’ 확장과 수축을 반복해야 할 심장근육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축하지 않으면서 심장박동이 멈춰버리는 질환이었다. 10만 명 중 한두 명만 걸리는 병인데 특히 소아에게는 흔치 않은 희귀난치병이라고 했다.
친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게 연락했을 터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장치라고 하는데, 혹시 보험 등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할지 알기에 일단 “알아보겠다”고 했다. 마침 보건복지부와 병원을 출입하고 있던 터라 물어볼 창구를 알고 있었다.
먼저 치료 전반에 대해 정확히 알기 위해 아이 담당의사에게 연락했다. 전문가가 전하는 상황은 친구에게 들은 것보다 한층 심각했다. 아이가 달아야 할 인공장치는 ‘베를린하트’라는 이름의 소아용 심실보조장치로 전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라 했다. 한 마디로 ‘독점’ 장비란 뜻이다. 소아심장환자 자체가 극소수일 테니 관련 치료기기가 희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더구나 독점이라면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일 수밖에 없다.
이미 보험등재신청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심사가 빠르게 진행되긴 어려워보였다. 당장 등재심사대에 오른대도 다음 달인데, 아직 심사대에 오르지 않았다면 최소 그 다음 달까지 두 달간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해야 했다.
사실 가장 좋은 치료법은 건강한 심장을 이식받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소아에게는 그마저 쉽지 않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린아이의 심장이 필요한데, 사고사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심장을 기증하는 아이가 1년에 몇이나 되겠나. 그래도 혹시 몰라 정부 장기기증 통계를 확인해봤지만 역시나 친구 딸이 기증받을 수 있는 만 5세 미만 영·유아 심장은 연중 10개도 되지 않았다. 앞서 줄 서있을 환아들을 생각하면 사실상 이식 가능성이 없는 셈이었다. 자연 치유될 때까지 심장에 인공장치를 달고 근근이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폐렴이나 가와사키병에만 걸려도 그럴진대 하물며 심장 이상이야…. 이곳저곳 연락을 돌린 나는 전보다 한층 더 비관적인 마음이 들었다. 친구에게 “관련 기획기사라도 고민해보겠다”고 했지만 사실 막막했다. 이미 보험등재 신청까지 올라갔다니 그저 빨리 등재되길 기도하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인 듯싶었다.
친구 부부라고 이런 상황을 몰랐을까. 그래도 둘은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생업과 간병을 병행하면서 언론사 이곳저곳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제보하고 SNS와 온라인 카페 등 각종 창구를 통해 아이의 사연을 알렸다.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도 올렸다. 소아 심장질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이고 유일한 장치가 급여대상에 들어가지 않는 건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나는 해당 청원 링크를 몇몇 온라인 카페와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퍼 날랐다). 부부의 노력 덕인지 제법 많은 언론에서 이 내용을 기사화했다.
비록 큰 도움은 줄 수 없었지만 나는 틈나는 대로 아이 안부를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매번 연락할 때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감안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다행히 친구의 답은 ‘수술 잘 끝났어’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야’ ‘(보조장치) 보험 등재가 잘 진행 중이래’ 같은 것들이었다.
지난해 9월에는 ‘아이 상태가 좋아져 일반병실로 옮기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엄마, 아빠의 사랑 덕에 아이가 잘 버티고 있구나. 축하하고 너도 힘내!” 나는 진심으로 기뻤고 또 놀랐다. 이후 한동안 친구와의 연락이 끊겼다. 당장 큰 고비를 넘긴 아이 소식에 안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바빠졌기 때문이다. 넷째를 낳은 뒤 하루하루는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갓난아기의 몸으로 잘 버틸 수 있을까.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친구의 부탁을 받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던 지난해 어떤 이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기적이 정말 일어난 것이다. 부모의 정성과 간절함이 불가능에 가깝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늦었지만 친구에게 축하 문자를 보냈다. ‘축하해줘 고마워! 심장 기능이 많이 좋아져서 집에서 약물치료만 하면 된다고 해 퇴원했어.’ 도착한 답 문자에는 그동안 오간 수많은 문자에서 느낄 수 없었던 희망과 활기가 묻어났다. ‘갑자기 집에서 두 명을 보게 되니 힘든데 (넷을 보는) 너는 참 대단하구나. 리스펙트 유.’ 전에 없이 너스레까지 떠는 모습에 내 기분까지 말할 수 없이 흐뭇해졌다.
새삼 부모의 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잠시나마 비관적인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은 정말 그 작은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진짜 ‘리스펙트’를 받아야 할 건 그들 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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