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사회의 재앙일까. 고령 운전자들이 일으키는 교통사고 소식은 해외에서도 들려온다. 올해 98세인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은 지난달 맞은편 운전자를 다치게 하는 사고를 일으킨 뒤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했다. 고령화가 빠른 일본에서는 2017년 교통사고 사망자 35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고령자가 일으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사고 경위가 보도될 때마다 “브레이크인 줄 알고 액셀을 밟았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고령자들의 설명이 판박이처럼 반복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곤 한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적성검사 기간을 과거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한다. 일부 지자체가 노인들이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교통비를 지원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유인책으로서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1998년부터 65세 이상 운전면허 자진반납 캠페인을 벌였다. 지난해부터는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 때 인지기능(치매) 검사를 도입했다. 그런 덕인지 최근에는 연간 고령자 30만 명 이상이 면허를 반납하고 있다.
▷이런 캠페인이 먹히는 가장 큰 힘은 본인의 자각과 가족의 격려에서 나오는 듯하다. 일본 미디어에는 자발적으로 면허를 반납한 고령 명사들의 체험담과 주변 어르신을 어떻게 설득해 마음의 상처 없이 면허를 포기시킬까 고심하는 사연들이 자주 소개된다. 장애물이 있으면 멈춰서는 자동 브레이크도 보급되고 있다. 노화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충격은 과거 너끈히 할 수 있던 일을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인지기능과 운동 반응속도는 떨어지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마음은 한결같다. 그렇다고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자신감만으로 운전대를 잡기에는 본인은 물론 타인의 생명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