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이상재 선생 현손 ‘미국공사왕복수록’ 등 당시 외교자료 8점 기증
13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월남 이상재의 현손 이상구 씨가 월남이 1897∼1899년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초대 2등 서기관으로 활동할 당시 남긴 외교문건을 소개하고 있다. 이 씨는 지난해 을사늑약(1905년) 이후 미국 워싱턴 주미 공사관에서 강제로 태극기가 내려진 뒤 113년 만에 다시 태극기를 게양한 인물이기도 하다. 문화재청 제공
“우리 미국인이 회사 하나를 설립하려고 하는데 명칭은 ‘조선기계주식회사’다. 철로 및 양수기, 가스등 3건 사안이다. 미국인 딸능돈 뉴욕 법관.”
1888년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초대 2등 서기관으로 활동한 월남(月南) 이상재(1850∼1927·사진)가 남긴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조선 외교관으로 미국 워싱턴에 있던 월남은 딸능돈(달링턴)이라는 미국인 사업가의 제안을 조정에 보고하기 위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이 문서에는 미국에서 제시한 계약서 초안인 ‘철도약장(鐵道約章)’이 함께 수록돼 있다.
1888년 월남 이상재가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미국 워싱턴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의 현재 모습.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그중에 미국 측과 경인선 부설을 위한 구체적인 협의 과정이 담긴 약정 문서가 눈에 띈다. “우리가 철로를 조선 경성 제물포 사이에 설치하는데, 무릇 해당 개설 도로와 역사 건축 부지의 토지는 특별히 정부에서 면세를 허용할 일”이라며 구체적 협상 조건이 등장한다. 이 사료를 분석한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경인선 완공에 10여 년 앞선 1888년에 미국에서 이런 제안을 했다는 사실은 학계에도 처음 알려진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왕복수록’과 더불어 월남이 외교관으로 재직했을 때 작성한 편지 38통을 묶은 ‘미국서간’도 이번에 기증됐다. 파견 기간 부모의 안부를 묻거나 집안 대소사를 논하는 등 개인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사적인 편지에서도 자주 독립을 향한 월남의 기상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는 30여 국이다.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지만 각국 공사와 서로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이는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使命)을 욕보이는 것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