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땅의 정취 머금은 와인이 좋은 와인”
와인 생산자 집안의 7세대인 이자벨 르주롱. 이설 기자 snow@donga.com
2년 전만 해도 일부 힙스터 사이에서 유행하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강자로 떠오른 와인이 있다. 자연주의를 내세운 ‘내추럴와인(Natural Wine)’이다.
때마침 맹렬한 내추럴와인 옹호가인 이자벨 르주롱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프랑스 최초의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와인 최고전문가)이자 세계 각지에서 와인 행사를 개최하는 와인계의 슈퍼스타다. 12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그는 “내추럴와인을 마시는 건 자연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며 “단언컨대 내추럴와인은 삶을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할 우리의 미래”라고 했다.
내추럴와인이란 기성 와인의 반대말에 가깝다.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만 사용하며, 이산화황 인공효모 등 첨가물도 일절 넣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다. 비료를 뿌리지 않아 포도나무에 벌레가 끓거나 실패작인 와인 ‘식초 통’을 끌어안고 좌절하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르주롱은 이 모든 과정을 자연스러운 생산 과정으로 본다. 일반 와인숍에서 구매 가능하며 가격은 일반 와인보다 살짝 비싼 편.
“화학물질을 넣으면 보다 안정적인 결과물을 얻을 순 있죠. 하지만 자연적 독창성은 사라지고 말아요. 다양한 땅의 정취를 머금은 와인이 좋은 와인이라고 믿습니다. 미생물이 꼬물대는 살아 있는 와인요.”
“와인 지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화가 아쉬워요. 전문가들의 평가 잣대와 마케팅이 와인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과 감각을 가리는 게 아닌가 합니다. 색과 맛 등 모든 기존의 지식을 버리고 즐겨야 합니다.”
지난해 말에는 르주롱이 쓴 책 ‘내추럴와인’(한스미디어·3만2000원)도 국내 출간됐다. 책에서 그는 ‘내추럴와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이 본래의 와인인데, 오늘날 드문 것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7800여 년 전 와인의 고향 조지아에서는 그저 포도즙과 기다림으로 와인을 빚었다. 그는 “자연은 영화 ‘아바타’ 속 생명의 나무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다”며 “불과 100년 사이 사라진 와인 본연의 제조 방식과 맛을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