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파리 TOP10 프랑스 식당 허재욱 셰프 “정해진 메뉴 없어도 절 믿고 오세요” [동정민 특파원의 파리 이야기]

입력 | 2019-02-15 14:00:00


허재욱 셰프가 8일 오후 파리 17구 ‘쁘띠 부따리’에서 메인 요리 재료인 거위를 손질하는 모습. 파리=동정민 특파원


“오늘 저녁은 42명까지 손님을 받았네요.”

8일 오후 6시 프랑스 파리 17구에 위치한 프랑스 식당 ‘쁘띠 부따리’(작은 부따리)의 허재욱 총괄 셰프(44)는 “다른 날보다 많은 손님을 받았다”며 웃었다.

이 식당은 주방 인원을 확충 중이라 매일 저녁 30석 안팎으로 예약을 제한하고 있다. 이 날은 잠시 쉬고 있는 친구 셰프가 도와주러 오면서 손님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개업한 ‘쁘띠 부따리’는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에서 파리 전체 식당 1만6000여개 중 10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인기 식당이다. 구글 평점 5점 만점에 4.8점, 레스토랑 평가 사이트 ‘포크’에서 10점 만점에 9.6점으로 모두가 최상위급이다. 그가 역시 총괄 셰프로 있는 파리 6구 ‘부따리’ 역시 트립어드바이저 평가 순위가 14위로 최상위급이다.

중세 시절부터 프랑스 남서부에 큰 성을 갖고 있는 귀족 집안 ‘부따리’의 대를 잇는 장남 샤를 드 생 뱅상은 캐비어 유통 사업을 하다가 2016년부터 식당 사업을 시작했다. 허 셰프는 개업 6개월 후 부따리의 셰프로 영입됐다. 이후 뱅상 사장은 일본 도쿄에 2호점을 냈고, 지난해 파리 17구에 ‘쁘띠 부따리’를 오픈했다. 허 셰프는 현재 뱅상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 세 곳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총괄 셰프이자 ‘쁘띠 부따리’의 50% 지분을 가진 오너 셰프다.

그의 식당에는 정해진 메뉴가 없다. 허 셰프가 매일 아침 공수할 수 있는 좋은 재료를 확인한 뒤 그 날 메뉴를 정한다. 손님들은 무슨 음식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허재욱 셰프’를 믿고 그냥 온다. 뱅상 사장이 “프랑스인 셰프보다 훨씬 프랑스 요리를 잘 한다”고 극찬하는 허 셰프를 만나봤다.

허 셰프와 ‘부따리’ 음식점 사장인 샤를 드 생뱅상이 처음 인연을 맺은 6구 ‘부따리’ 식당에서 함께. 뱅상 사장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가업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고급 식재료 캐비어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허 셰프는 프랑스에서 태어났나요?

“아뇨. 한국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왔어요. 태어나서 1999년까지 한국에서 살았죠. 제대 후 일본으로 가서 음향 공부를 했어요. 2007년 뒤늦게 프랑스로 와서 요리학교 르꼬르동블루를 다녔어요. 이후 인턴으로 미슐랭 원스타 오귀스트와 프랑스 최고의 셰프로 꼽히는 조엘 호부숑 식당에서 일하면서 프랑스 요리 생활이 시작됐죠.”

프랑스에서는 요리를 시작하면 인턴부터 시작해 견습생, 꼬미(막내 요리사), 부파트장, 파트장, 파트장 수석, 수셰프(부주방장)를 거쳐 셰프가 되기까지 8단계를 거친다. 허 셰프 역시 이 단계를 모두 거쳤다.

-처음 인턴으로 가면 뭘 하나요?

“요리사들의 심부름을 비롯해 허드렛일을 하죠. 인턴 후 첫 식당으로 콩코드 광장 뒤편에 있는 비스트로(동네 식당)에 갔어요. 월급 1200유로(약 150만 원)를 현금으로 10유로 20유로짜리와 동전 합쳐서 받았어요. 여러 식당을 거쳐 미슐랭 투스타 ‘따블르 드 조엘 호부숑’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 때부터 프랑스 최고의 셰프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프랑스 최고의 셰프는 어떻게 요리하나요? 뭐가 다른가요?

“세계적인 요리사 알랭 뒤카스의 수석 제자이자 미슐랭 쓰리스타 ‘라세르’의 셰프였던 장 루이 노미코스가 저를 포함해 4명과 함께 식당을 낸 적이 있어요. 당시 실력이 부족했던 제가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죠. 1분마다 혼났어요. 뭐 하나 들기도 겁이 났어요. 다 틀렸다고 하니까요.”

-예를 들면요. 뭘 지적하는 건가요.

“소금 뿌리는 것부터요. 팔을 높이 들어 소금을 뿌리면 소금이 내려오다가 흩어져버린다고요. 자기가 뿌리고 싶은 곳까지 정확히 손을 내려서 뿌려야 손님들에게 정확한 맛을 줄 수 있다고요. 지금 보면 다 맞는 이야기들이에요. 미슐랭 스타 셰프들과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죠. 그 때는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르고 시키는 대로만 했었는데 제가 셰프가 되고 보니 자연스레 그 경험들이 제 음식으로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 셰프 자리에 올랐을 때 감격스러웠겠어요.

“아뇨. 오히려 스트레스가 너무 크고 불안해서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미슐랭 투스타 식당 ‘피에주’에서 파트장과 수셰프(부주방장)를 마치고, 2014년 ‘쉐 장’이라는 미슐랭 원스타 식당에서 처음 셰프가 됐어요. 제가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컸어요. 특히 직전에 이탈리아 친구가 미슐랭 원스타를 따 놓은 상태에서 물려받은 거라 중압감이 엄청 났습니다. 저는 원스타를 유지했어요.

-그러다가 왜 ‘부따리’로 옮겼습니까.

”‘쉐 장’ 셰프를 1년 반 만에 그만뒀어요. 미슐랭 별을 유지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고 그러다보니 막상 제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니 별로 기억이 없었어요. 너무 정신없이 살아서요. 제 음식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저와 친한 셰프가 부따리 뱅상 사장에게 저를 추천해줬어요.“

당시 뱅상 사장은 고급 식당이 모여 있는 파리 6구 생제르망데프레에서 거액을 투자해 야심 차게 식당을 개업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프랑스판 TV 요리 경연 프로그램 ‘탑 셰프’에서 3위를 차지한 셰프를 영입했지만 손님이 없어 적자가 쌓여갔다. 개업 6개월 후 영입한 허 셰프가 맡은지 한 달 만에 트립어드바이저 파리 식당 순위 1위로 치솟았다.

-비결이 뭔가요.

”자신의 가업인 캐비어와 어울리는 맞춤형 음식점이 되어야 한다는 사장의 고집을 꺾었습니다. 지금은 메뉴 중 캐비어 들어가는 음식을 한 개로 줄였어요. 그리고 제 음식을 했죠. 저를 믿어준 사장이 참 고맙죠. 내 음식이 통한다는 쾌감, 지금도 그것 때문에 일합니다.“

-지난해 개업한 ‘쁘띠 부따리’는 절반의 지분을 가졌습니다. ‘오너 셰프’를 선택한 이유는요?

”‘부따리’는 인테리어와 접시까지 워낙 고급 음식점이라 가격이 비싼 편이고 손님도 관광객이 많습니다. 메뉴가 계속 바뀌어도 손님들이 알고 좋아할만한 음식들 위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음식을 못 만든다는 갈증이 생겼어요. 좀 더 자유롭게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17구에 있는 ‘쁘띠 부따리’는 손님 중 90% 이상이 파리 본토 사람들이에요. 프랑스 사람들은 음식에 호기심이 많아서 일단 모르는 음식도 입에 넣고 보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할 수 있어요. 프랑스 사람들에게 제 프랑스 음식을 평가 받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허 셰프가 ‘쁘띠 부따리’ 주방에서 요리사들과 함께 저녁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파리=동정민 특파원


그의 하루는 오전 8시부터 시작된다.

”(허 셰프)저는 요즘 하루 종일 ‘쁘띠 부따리’에 있어요. 아직 자리가 덜 잡혔거든요. 출근하면 음식 재료가 배달됩니다. 미리 다 조율한 이 재료가 하루를 좌우하죠. 저녁 메뉴를 정하면 요리는 이 때부터 시작입니다. 고기 소스의 경우 아침부터 만들지 않으면 저녁 식사에 쓸 수가 없거든요.“

그는 점심 서비스를 마치면 곧바로 6구 ‘부따리’로 향한다.

”(허 셰프) 거의 매일 갑니다. 제가 너무 바빠서 못 가면 현장을 맡고 있는 일본인 수셰프(부주방장)가 ‘쁘띠 부따리’로 와요. 제일 챙겨야 할 건 역시 메뉴입니다. ‘8대 2 비율’로 제가 80%, 이 일본인 수셰프가 20% 정도 기획해서 메뉴를 정합니다. 새로 개업했다고 ‘부따리’를 소홀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열 시간 넘게 같이 일하기 때문에 주방 내 분위기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직원들의 고민과 주방 분위기도 살펴야 해요. 다시 ‘쁘띠 부타리’로 와서 저녁 준비와 서비스 후 다음날 음식 재료 주문할 리스트를 정리하면 밤 12시에요.“

허 셰프가 거위에 숯 향을 배게 하기 위해 거위 안에 숯 연기가 스며들도록 누르고 있는 모습. 파리=동정민 특파원


기자와 만난 8일 저녁 식사의 메인 메뉴의 재료는 거위. 그는 오후 7시가 되자 주방 한 구석에서 숯을 달구기 시작했다. 숯이 달궈지자 손질된 거위 한 마리를 통째로 가져다가 불판 위에 올려놓고 한동안 누르고 있었다.

”숯 연기를 거위 안에 배게 하는 거에요. 일본에서 참숯을 직접 공수합니다. 운송비용이 워낙 비싸서 사장이 반대하기도 했지만 막상 이 숯을 쓰면서 손님들을 엄청 끌었어요. 특유의 이 숯 향을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한국에서 공수하면 좋겠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곳을 못 찾았어요. 한국 고급 고깃집에서 쓰는 참숯을 이 곳에서도 쓰는 거죠.“

저녁 8시가 넘어서자 식당은 순식간에 꽉 찼다. 예약 안 하고 들렀다 발길을 돌리는 손님도 여러 명. 사과 오렌지 레몬 생강으로 만든 소스에 전갱이를 넣은 샐러드가 전식으로, 허 셰프가 개발한 국물에 대구와 푸아그라를 넣어 만든 본식과 거위 구이가 또 다른 본식으로 제공됐다. 6구 ‘부따리’ 음식이 너무 맛있어 들러봤다는 손님 앙뚜안 씨는 ”음식이 세련되고 전식 본식 후식의 균형, 와인과의 균형이 정말 잘 맞는다“며 음식을 싹싹 비웠다.

허 셰프가 가장 중요시 하는 건 음식 재료다. 파리 10구에 있는 음식 재료 거래처에서 거래처 사장(오른쪽)과 각종 음식 재료를 살펴보고 상의하는 모습. 파리=동정민 특파원


그는 노총각이다.

”(허 셰프)주위에 이혼한 셰프 친구들이 꽤 많아요. 이렇게 매일 사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저도 결국 여자친구와 헤어졌죠. 셰프 중 몸이 성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 늘 아래를 보면서 요리해서 등이 굽어 있잖아요. 저도 목이 너무 아파서 잠 잘 때 베개를 못 베거든요. 그래도 아직은 일하는 게 더 좋아요.“

그는 17구에 또 다른 식당 개업을 준비 중이다. 이번에도 뱅상 사장과 절반 씩 투자할 계획이다. 프랑스 음식으로는 낯선 국수 전문점이다.

”현장에 있으니 매일 음식 아이디어가 생기거든요. 국수집이 정말 하고 싶어졌어요. 국물은 오늘 메인 메뉴 중 대구와 푸아그라를 넣었던 그 국물이에요. 사흘 동안 오리뼈와 닭 날개, 버섯, 생선 등을 넣고 만들죠. 그 국물에 이탈리아 나폴리 친구 할머니의 레시피에서 배운 면, 그리고 숯에 구운 고명을 올리면 다들 좋아하실 것 같아요.“

그에게는 자신만의 요리 원칙이 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제 손님은 평생에 딱 한 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오늘 인 거에요. 그런 사람에게 함부로 음식을 내어 줄 수는 없잖아요. 또 하나 제가 레스토랑에 왔을 때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려고 해요. 직원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 두 가지 원칙만 지키면요, 정말 맛있을지는 불확실해도 적어도 맛이 없을 수는 없어요.“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