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록키1
심재명 영화사 명필름 대표
1976년 개봉한 전 세계적 흥행작 록키는 ‘슬라이’로 불린 실베스터 스탤론, 그가 그때까지 살아냈던 인생의 총합이다. 잘나가는 제작자 어윈 윙클러가 시나리오에 반해 36만 달러에 넘길 것을 제안했으나 스스로 주연과 감독을 맡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출연료를 터무니없이 낮추고 감독은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조건으로 100만 달러라는 초저예산 제작비로 단 28일 동안 촬영을 마치고 영화를 완성한다. 집 월세도 밀리고 갚아야 하는 빚까지 있었던 그가 큰돈을 거절한 것은 단순한 배짱이 아닌 자신의 삶이 녹아 있는 이 이야기에 대한 ‘절박한 의지’였을 것이다.
록키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던 이탈리아 이주민 출신 남자 스탤론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위대한 것은 이기고 지는 삶이라는 경기에 주목하는 대신 ‘버티는’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가족도 없이 고리대금업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삼류 복서. 남루한 집으로 돌아오면 그를 반기는 건 어항 속의 거북이와 금붕어. 동네 펫숍에서 일하며 서른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 해본 내성적인 여자. 변변한 직업도 없이 술주정을 일삼는 그녀의 오빠. 한때 전성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퇴락한 스승.
록키는 3라운드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깬다. 경기는 판정패로 끝났지만 끝까지 버텼기에 그의 삶은 진 경기가 아니다. 퉁퉁 부어 앞이 안 보이는 눈으로 “에이드리언”을 외치는 록키의 망가진 얼굴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날계란 다섯 개를 깨 먹으며 골목과 강변을 지나 미술관 계단까지 달렸던 장면에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제작비 때문에 수정 촬영된 텅 빈 아이스링크의 한밤 데이트 장면이나 즉흥으로 완성된 엔딩 신, 실제 스탤론의 집과 반려견의 출연까지. 결핍과 부족함을 불굴의 창의력으로 돌파해 명작의 반열에 오른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은 ‘록키 스텝’으로 불리는 필라델피아 미술관 장면처럼 드라마틱하다.
최근 스핀오프(외전)작 ‘크리드 2’의 예고편을 극장에서 보고 세상 많은 이들의 인생작 ‘록키’를 다시 떠올렸다.
심재명 영화사 명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