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무리 나라가 금지해도 낙태는 비밀리에 행해져 왔다. 19세기에는 몸에 해로운 약을 먹이거나 심지어 배를 발로 차서 낙태시키는 행위도 자행됐다. 시술이 불법이다 보니 허가받지 않은 열악한 시설에서 수술을 받다 목숨까지 잃고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지금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그러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때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처음 제기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5∼44세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토대로 2017년 한 해 동안 약 5만 건의 낙태 수술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은 형법상 낙태 행위에 대해 임부와 의사를 모두 처벌한다. 임신 12주 이내 등 낙태 가능 기간 요건도 없다. 다만 모자보건법상 유전적 장애, 전염성 질환 등 일부 예외를 인정할 뿐이다.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어서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사문화된 법 가운데는 그 법의 존재 자체가 대상 행위의 범람을 막는 예방 기능을 하기 때문에 존치의 순기능이 있는 경우도 있다. 헌재는 2012년 4(위헌) 대 4(합헌) 결정을 내려 낙태 처벌 조항이 유지됐고 올 4월 초 다시 결정을 할 예정이다.
▷낙태 논쟁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맞부딪쳐 결론을 내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사유가 어떠하든 낙태가 여성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는 점이다. 보사연 조사에서 낙태 수술 여성의 54.6%가 죄책감, 우울감, 자살 충돌 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낙태 금지 찬반을 떠나 낙태를 줄이고 더 나아가 낙태가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