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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이야기]미세먼지보다 무서운 실내공기 오염

입력 | 2019-02-16 03:00:00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날씨가 추워지면 미세먼지 걱정을 덜 하게 되는 이유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미세먼지를 날려 보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겨울 날씨는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한 삼한사온(三寒四溫)이 특징이라지만 요즘은 따뜻한 나흘이 미세먼지에 뒤덮여 사람들은 이를 ‘삼한사미(三寒四微)’라 비꼬며 “차라리 추운 게 더 낫다”고 말한다. 겨울철 공기가 정체되면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칼바람일지라도 때로는 삭풍(朔風)이 오히려 반갑다.

과거 겨울철 미세먼지가 큰 피해를 가져온 사건들이 있었다. 벨기에 뫼즈강 공업지대에서 발생한 매연이 1930년 12월 1일부터 일주일간 정체된 대기 속에 갇혀 60명의 사망자와 6000여 명의 호흡기 환자가 발생했다. 미국 피츠버그 남쪽 도노라 공업지대에서도 1948년 10월 26일부터 일주일간 바람이 멈추며 매연과 미세먼지로 20명이 사망하고 약 6000명의 폐질환 환자가 발생했다. 1952년 12월 영국 런던에서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시민들이 많은 양의 석탄을 난방에 사용했는데 미세먼지와 안개가 뒤섞인 스모그가 12월 4일부터 10일까지 런던 하늘을 뒤덮어 100m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3주간 3000여 명이 사망했고 다음 해 2월까지 총 1만2000여 명이 사망한, 끔찍한 ‘런던 스모그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 사건들은 무풍(無風)현상으로 대기가 정체된 곳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극성을 부리는 미세먼지도 느려진 풍속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중국에서 유입된 미세먼지와 자체 미세먼지가 대기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세먼지가 자주 나타났던 지난해 서울의 평균 풍속은 초속 1.7m로 1918년 관측 이래 가장 느렸고 특히 최악의 미세먼지를 기록한 지난달 14일 서울의 풍속은 0.9m로 올 들어 가장 느렸다. 풍속 감소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극지방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유라시아 대륙과의 온도 차가 줄어들어 바람이 약해지고 대기가 정체됐다는 것이다.

실외뿐만이 아니라 실내에서도 정체된 공기는 큰 피해를 준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일반 가정의 미세먼지 농도는 바깥에 비해 20∼30%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창문을 닫아두면 이산화탄소와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으로 오염이 가중되어 건강에 더 해롭다. 게다가 음식물까지 조리하게 된다면 실내 미세먼지 농도는 ‘나쁨’ 단계보다 수십 배 나빠질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대기오염으로 연간 370만 명이 사망하는데 실내 공기 오염으로는 420만 명이 사망해 오히려 더 많다고 한다.

미세먼지를 없애기 위해 바람을 불게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집의 오염된 공기를 없애기 위해 바람을 불러들일 수는 있다. 창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영어로 창문(window)은 바람이 드나드는 구멍을 뜻하는 ‘wind-eye’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하루에 세 차례 정도는 창문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켜 줘야겠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