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북한과 베트남 ‘혈맹 → 배신 → 동반자’의 역사
오토바이를 탄 베트남 호찌민 시민들이 퇴근을 서두르고 있다. 베트남 어느 도시에서나 매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호찌민=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50여 년 전 베트남 상공에서 미군과 북한군은 생명을 내건 전투를 벌였다. 당시 북한이 베트남 전쟁을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수백 명의 지원군을 파견하면서 펼쳐진 상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혈맹이었던 북한과 베트남이 ‘애증의 역사’를 갖게 된 이유는 뭘까.
○ “하노이 상공을 평양 하늘처럼 사수하라”
베트남전에 참전한 북한군 비행사들. 2011년 미국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가 발굴해 공개한 사진이다. 1983년 귀순한 북한 공군 이웅평 상위는 “베트남전에서 북한군 조종사 67명이 전사했다”고 증언했다. 사진 출처 우드로윌슨센터
북한은 베트남전 초기 무기 10만 정, 군복 100만 벌 등 물자를 지원했다. 이후 전쟁이 본격화되자 1966년 말부터 공군과 공병부대를 ‘지원군’이란 이름으로 파병해 북베트남군을 지원했다. 공군력에서 열세에 몰린 북베트남은 소련과 중국에 먼저 조종사 파견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북한만 1개 비행연대 규모에 해당하는 조종사 60명, 정비사 50명 이상을 보냈다. 조종사들이 수시로 순환근무를 했던 것을 감안하면 베트남전 기간 연인원 1000명가량의 북한 공군 병력이 참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에 파병된 북한 조종사들은 황해도 황주 주둔 203비행연대 소속이었다. 베트남 공군복장으로 참전한 북한 조종사들은 하노이 주변 비행장에 주둔했다. 당시 김일성 수상은 “하노이 상공을 평양 하늘처럼 사수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또 공병부대를 파견해 북베트남 당 중앙위원회와 국방부가 들어갈 갱도를 건설했고, 약 100명의 심리전 부대도 파견해 한국군 전투지역에서 활약했다.
양국 관계는 2007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해 베트남에서 호찌민 주석 이후 처음으로 농득마인 총비서가 북한을 찾았고, 양국 우호관계를 발전시키자는 데 합의했다. 베트남을 통한 탈북자들의 한국행 루트도 막혔다.
현재 베트남은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을 이루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성공함으로써 북한이 배우고 싶은 ‘롤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베트남 국빈방문 일정을 소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정은 시대 북한과 베트남이 과거 ‘혈맹과 배반’의 역사를 넘어 ‘동반자’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호찌민=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