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은산해운항공
은산해운항공 양재생 대표가 직원 조직도 앞에서 직원들을 자랑하고 있다. 은산해운항공 제공
“오즐(오늘도 즐거운 하루), 오사(오늘도 사랑합니다).”
“오파(오늘도 파이팅), 오감(오늘도 감사합니다).”
14일 오전 부산 중구 은산빌딩 9층 복도에서 은산해운항공㈜ 양재생 대표(62)와 30대 남성 직원이 스스럼없이 나눈 인사말이다. 짧은 대화에서 회사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은산해운항공 현장 직원들이 터미널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은산은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는 초긍정적 마이드로 고객 감동 서비스를 실천하고 있다. 은산해운항공 제공
그 원동력은 양 대표를 비롯해 직원 350명의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는 구호로 뭉친 초(超)긍정 마인드다. 이는 고객 감동서비스로 이어진다. 전산지원팀 이헌우 과장(40)은 “정이 넘치는 은산해운항공은 회사가 아니라 한 가족 같다. 경조사가 생기면 모든 임직원이 자기 일처럼 돕는다”고 자랑했다.
은행에서 빌린 3000만 원과 직원 5명으로 시작해 굴지의 중소기업이 되기까지는 현장에서 익힌 물류의 가치와 흐름에 대한 양 대표의 노하우가 큰 힘이 됐다. 양 대표는 창업과 동시에 처리가 까다로운 소량혼재화물(LCL)을 모아 대형 컨테이너로 일괄 운송하는 시스템을 국내 처음 개발했다. 수출입에 어려움을 겪던 중소기업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래를 준비한 자에게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였다. 조기 출근과 신속 처리, 고객 친절을 머리에 새기고 허리띠를 더 졸라맨 은산에 일감이 쏟아졌다. 관련 업체들이 허둥댈 때 작은 물량 하나라도 처리해 주는 업체는 은산밖에 없었다. 이때 은산의 직원 수는 두 배로, 매출은 200%까지 치솟았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당시 물류기업들이 위험물인 가스가 들어있다며 꺼리던 성화봉 관련 물품을 42개국에 성공적으로 운송해 은산 브랜드를 널리 알렸다. 같은 해 양산에 물류터미널(창고)을 지어 컨테이너터미널 업무에 뛰어들면서 사세가 커졌다.
2008, 2011년에는 강서 신항만과 화전에, 2014, 2017년에는 인천항 근처(경인)와 인천국제공항에 터미널을 개장했다. 현재 국내 사업장만 7곳이다.
은산의 거래업체는 개인화주(貨主)를 포함해 2만5000여 개사다. 해외 파트너사도 150여 개다. 해상 물동량은 20피트짜리 컨테이너로 연간 10만 개에 이른다. 항공으로는 연간 1만 t을 처리한다. 은산의 연매출은 약 3000억 원이다.
양 대표는 “물류서비스는 예술과 같다. 감각과 타이밍, 즉시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며 “화주의 요구를 신속히 담아내고 맡긴 화물을 제대로 운송해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서비스하면 고객 감동과 기업 신뢰로 이어지게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기업 발전과 더불어 장학사업을 비롯한 사회공헌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양 대표는 한우물만 판 경영인답게 “물류혁명을 통해 은산을 글로벌 으뜸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