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 장수마을도 가족해체 가속화… 노인 복지비용 ‘눈덩이’ 재정 위협 발 빠른 선진국은 고령인구 자원화, 우리도 노인이 뛸 신산업 발굴해야
이정재 서울대 명예교수
2001년 서울대는 100세를 사는 사람은 특별한지, 특정 장수지역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박상철 당시 서울대 의대 교수를 중심으로 건강, 유전, 식생활과 가정, 사회심리 및 환경생태 연구를 병행했다. 연구대상지로는 100세인이 많은 구례, 곡성, 순창, 담양 지구가 선정됐고 이들 지역은 장수벨트의 상징이 됐다. 연구는 가장 중요한 장수요인이 건강보험제도와 최소생계비 지원정책임을 밝혀 장수사회에서 국가의 중요성을 알렸다. 또 100세인은 낙천적이고, 생활능력이 있으며, 자존감이 있고,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무척 평범한 결과도 발표했다. 아울러 건강한 장수를 위해서는 여유를 가지고 의사 결정의 주체가 되며, 생계활동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장수 연구의 선진국인 일본, 미국과도 대동소이했다.
이 연구는 노후 준비가 부족한 경제개발 세대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후속 연구와 정부의 후속 정책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기업은 장수식품을 소개하는 데 바빴고, 언론은 생활특집을 냈으며, 편안한 노후를 찾아 시골로 주거를 옮기는 사람이 늘었다. 그러나 연구는 지속되지 못했고, 국가 운영이나 정책에서 장수사회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다.
지난 20여 년 동안 출산율은 줄었지만 총인구는 줄지 않았다. 그사이 고령사회가 됐고 가족관계는 크게 변했다. 70% 이상이던 전체 가족의 노인부양률은 20%대로 급격히 줄었다. 그 대신 공적 부담이 매년 10조 원대에서 100조 원대로 늘며 국가의 성장을 우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청소년이 줄고 노인이 늘면서 미래 부양세대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장(長)수명화로 노후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소위 ‘워킹 실버(일하는 노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3, 4배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가 있다. 그래서 청년과 노인이 같은 일자리를 놓고 다투고, 노인들의 지혜가 폄하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훼손당한다는 억울함을 떨치기 힘들다. 그 결과 세대 양극화라는 새로운 문제가 정치와 사회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 노인의 지혜가 무시되고 행동이 지배하는 세상을 가리켜 “저것은 노인의 나라가 아니다”라고 노래했다. 코맥 매카시가 영감을 받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소설을 쓰고, 코언 형제가 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필자는 코언 형제가 영화에 등장하는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을 통해 ‘노인은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존경받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도스토옙스키가 ‘양파 한 뿌리의 선행’을 통해 가능한데도 행동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죄악임을 주장한 것과 유사하다.
성공적인 장수사회의 구현은 새로운 기회다. 우리가 노인을 베풀고 관리해야 할 짐으로 상정하고, 이미 고령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더 오래 사는 것’에 집중하는 사이, 선진국들은 장수명화와 함께 장수인이 살아갈 환경 조성, 그리고 장수사회를 새로운 경제적 기회로 활용하려는 연구를 통해 행동하는 노인을 ‘자원화’하고 있다.
이제라도 한국은 첨단기술과 가정산업, 도시와 전원, 생산과 인문의 결합과 같이 경험과 첨단이 융합되는 분야를 발굴해야 한다. 장수인이 참여하는 새 산업이 활성화되고, 존경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장수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이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야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된다.
이정재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