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레돔이 한국에 와서 처음 사과를 먹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1990년대 중반이었다. 그가 먹은 것은 홍옥이었고 그 새콤한 맛에 반했다. 당연히 맛있는 시드르도 있겠지? 했는데 그것이 술인 줄도 모르는 나를 보고 좀 놀라워했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생으로 먹을 사과도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
감을 언제 처음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과를 처음 먹어본 날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날따라 왠지 사과밭 쪽이 궁금해서 갔더니 바닥에 떨어진 사과 한 알이 보였다. 얼른 그것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강까지 걸어가서 깨끗이 씻은 뒤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갔다. 강물에 반짝이는 햇빛을 보며 사과를 한입 깨물었다. 흘러내리는 새콤달콤한 즙이 내 입안을 흥건하게 적시며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뭐라고 할까, 아삭아삭 소리와 함께 넘어가는 그 맛은 혓바닥뿐 아니라 나의 뇌 속 오만가지의 감각을 다 일깨워 주는 느낌이 들었다. 씨앗과 꼭지까지도 다 먹어버렸다. 그런데 그 사과의 품종이 뭔지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노르망디에 가볼 필요가 있어. 거기엔 백 가지가 넘는 사과가 있으니 그때 먹은 그 사과 맛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물론 시드르도 마셔야지.”
파리의 슈퍼마켓에서도 시드르를 살 수 있지만 그것들은 공장에서 만든 싸구려이기 십상이다. 진짜 시드르를 마시려면 프랑스 노르망디나 브르타뉴 지방으로 가야 한다. 이곳 농부들은 사과로 최고의 술을 만들어 그 기술을 자자손손 전해주었다. 시드르뿐 아니라 메밀 크레프도 만들었다. 사람들은 시드르와 메밀 크레프를 먹기 위해 그곳에 간다. 까칠한 메밀 크레프에 사과주 특유의 시큼하게 콕 쏘는 시드르를 마셨을 때 묘하게 어울리는 그 맛에 순간적으로 뇌에 반짝 전기가 들어왔다. 그때 무엇인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우리의 혀는 온갖 종류의 맛을 느끼고 그 풍성한 느낌이 뇌로 가서 상상력이라는 꽃으로 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크고 달콤하고 저장성이 좋은 과일만 선호한다. 사과든 수박이든 복숭아든 모든 과일이 크고 달콤한 것 위주로 남아있다. 소수의 입맛을 위한 것은 사라져 버렸다. 떨떠름하거나 시큼하거나 민숭민숭하거나 쓴, 납득할 수 없는 맛의 사과는 없다. 지금 시장에 가면 똑같은 사과밖에 없다. 혀도 점점 둔감해지고 뇌도 단순화된다.
“똑같은 맛의 사과를 먹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직업을 가지고…. 그러다 보니 좀 이상하다 싶은 남은 이해를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노벨 문학상도 나오고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괴짜 과학자도 나와 줘야 하는데 큰일 났네.”
이상야릇한 맛의 과일을 먹고, 이상야릇한 생각을 하고, 이상야릇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맛있기만 한 과일밖에 없다고 푸념하니 레돔은 노벨 문학상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고 한다.
“진짜 심각한 것은 미래에 닥칠 기후변화에 대비할 품종이 없다는 거야. 한국 기후에 병들지 않고 잘 자랄 사과나무와 포도나무를 구하고 싶어. 어떻게 하면 사라진 한국의 옛 과일 품종들을 찾아서 온갖 잡풀 속에서도 잘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그는 언제나 내가 풀 수 없는 문제만 낸다. 일단 사과주부터 한잔 마시고 생각해 봐야겠다.
신이현 작가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