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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폭력이 일상이 된 코치… ‘운동 앞길 망칠라’ 눈감은 부모들

입력 | 2019-02-19 03:00:00

침묵에 번지는 ‘운동부 지도자 폭력’




2017년 경기도의 한 고교 검도부 코치가 자신이 지도하던 남학생을 죽도로 마구 때렸다.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학생의 엉덩이와 허벅지엔 피멍이 들었다. 피해 학생 부모는 “코치가 아들의 하의를 벗긴 채 가둬놓고 때렸다”며 학교 측에 강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며칠 뒤 부모는 코치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처불 불원서’를 학교 측에 제출했다. 아들을 때린 코치가 ‘선수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는 비율이 높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코치는 감봉 2개월 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본보가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최근 5년간 학교 운동부 폭력 징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지도자가 학생 선수를 때려 해당 시도교육청에 보고된 건 모두 82건이었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39건이 3개월 이하의 정직(5명)이나 감봉(10명), 경고(16명), 주의(6명), 견책(2명) 등의 경징계로 마무리됐다. 시도교육청에 보고조차 되지 않은 사례까지 감안하면 학교 체육 지도자의 폭력 사례는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의 한 중학교 컬링팀 코치는 지난해 2월 일본 나가노 전지훈련 기간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페트병으로 선수 2명의 머리를 때렸다. 전지훈련이 끝난 뒤 피해 학생들이 코치의 폭행 사실을 학교 상담교사에게 알렸고 코치는 지도업무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이 코치 역시 감봉 3개월의 경징계를 받았고 곧 지도업무에 복귀했다. 다른 학부모들이 ‘복귀 동의서’를 써줬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이 복귀 동의서를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코치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상황에서 훈련을 빨리 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같은 해 6월 강원도의 또 다른 중학교 검도부 코치는 가르치던 학생이 걷기 힘들 정도로 다리를 마구 때리고도 경고 처분만 받고 학생들을 계속 가르쳤다. 학교 측은 이 지도자가 폭력 행사를 스스로 신고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조차 열지 않았다.

이처럼 학교 체육에서 발생하는 지도자 폭력이 대부분 경징계에 그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가 이를 제대로 문제 삼기 어려운 구조와 관련이 있다. 체육 특기를 인정받아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각종 대회에 많이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내거나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어야 하는데 코치나 감독 등 지도자 눈 밖에 나면 경기 출전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들이 고교 농구 선수인 학부모 A 씨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경기 출전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지도자 폭력 문제를 공개적으로 꺼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의 한 고교 농구부 코치가 학생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부상 중인 학생에게 무리한 훈련을 시켜 무릎 부상까지 입혔지만 학부모는 학교에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이후 드러나고 있는 체육계 성폭력 사건들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송강영 동서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코치나 감독이 ‘운동을 그만두라’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출전을 안 시키면 학생 선수 입장에서는 나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만큼 지도자들은 절대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윤다빈 empty@donga.com·김민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