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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명건]김경수 안희정 양승태의 공통점

입력 | 2019-02-20 03:00:00


이명건 사회부장

사람은 누구나 끌려다닐 수 있다. 권력욕이나 정염(情炎), 또는 친분(親分)에 사로잡히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그랬다. 끌려다녔다고 다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세 사람 모두 구속 수감됐다. 왜 그렇게 됐을까.

김 지사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2017년 5월 대선 전후 약 1년 동안 드루킹으로부터 끊임없는 인사 요구 압박을 받았다. 1월 윤모 변호사를 문재인 대선 후보 선대위에 넣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윤 변호사는 4월 문 후보의 법률인권특보가 됐다. 또 3월 도모 변호사를 추천받았는데, 그를 선대위에 넣지는 못했다. 하지만 드루킹은 집요했다. 5월 문 대통령이 당선된 뒤 6월 도 변호사를 일본 대사로 추천했다. 김 지사가 거절하자 드루킹은 댓글 여론 조작을 중단했다. 김 지사는 오사카 총영사를 역제안하고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실에 가능성을 타진했다. 청와대 측은 12월 센다이 총영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 지사는 2018년 1월 드루킹에게 센다이 총영사 수락을 설득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두 사람은 반목했다. 그리고 3월 드루킹의 출판사가 경찰에 압수수색당했다.

한두 달도 아니고 1년여다. 드루킹은 빚쟁이처럼 공격적이었다. 뻔뻔했다. 반면 김 지사는 수세적이었다. 관계 악화를 막으려는 자세였다. 김 지사는 드루킹 측의 ‘선플 운동’이 고마워 그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불법 댓글 여론 조작’의 대가를 지불하려던 것으로 봤다. 대선을 이겨 권력을 잡으려고 진 정치적인 빚 때문에 끌려다녔다는 것이다. 물론 김 지사는 확정 판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된다. 하지만 설령 댓글 조작과 무관했더라도 드루킹과 인사 청탁 문제로 장기간 얽히고설켜 구속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안 전 지사 2심 판결문에 따르면 그가 수행비서를 성폭행 및 추행한 기간은 2017년 7월 말부터 8개월이다. 대선 승리 후 김 지사가 청와대 인사 권력에 빠져들 때 안 전 지사는 욕정에 찌든 업무상 위력을 주체 못 했다. 안 전 지사는 2018년 2월 25일 수행비서를 성폭행하고 나서 그에게 ‘잠이 설핏 들다 깨어서 내 자신이 참 무책임하고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밀려왔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앞서 2400여 년 전 그리스 아테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는 노년에 접어든 뒤 여성 관계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거기에서 벗어난 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알고 있네. 이를테면 아주 무섭고 사나운 폭군에게서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기분이란 말이야.” 안 전 지사는 가끔 자책했지만, 바로 그 폭군 근성을 못 버려 결국 법정 구속됐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그가 일제 강제징용 소송 지연 등 47가지 범죄 사실과 관련해 직접 만난 사법부 및 행정부 외부 인사는 딱 1명뿐이다. 일본 전범(戰犯)기업을 대리한 판사 출신 한모 변호사다. 양 전 대법원장의 서울대 법대 2년, 사법연수원 4년 후배다. 두 사람은 영국에서 연수한 시기가 겹친다. 또 1994년 양 전 대법원장과 한 변호사는 법원행정처에서 각각 사법정책연구실장, 조사국장을 지냈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이 재혼한 부인을 소개한 사람이 바로 한 변호사의 부인이라고 한다. 두 부인은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5년 5월과 11월 한 변호사를 대법원장 집무실 등에서 만났다. 검찰은 이를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소송을 지연시킨 명백한 정황으로 판단했다. 결정적 구속 사유다. 40여 년 이어진 두터운 친분이 굴레가 돼버린 것이다. 만남 자체를 문제로 인식할 절제의 미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