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조선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좌편 하단 구석에 ‘44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은 메이지 유신 44년, 즉 1911년에 그렸다는 의미다. 조선이 이미 국권을 잃은 뒤였다. 그러나 조선은 그 이전에도 일본의 손아귀에 있었다. 특히 해월의 최후를 그린 그림은 이것을 명확하게 증언한다. 처형을 주재하는 두 명의 조선 관리와 세 명의 일본 군인. 조선 관리는 부채를 들고 있고 일본 군인은 허리에 긴 칼을 차고 있다. 시미즈 도운의 그림이 그의 말대로 다른 사람의 그림을 ‘다시 그린(再寫)’ 것이라면, 1898년의 형장 모습은 실제로 그랬을지 모른다. 해월의 죽음은 칼을 찬 일본인과 부채를 든 조선인이 대변하는 무리들이 공모하고 합작한 결과였다. 그것이 조선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해월의 정신마저 죽일 수는 없었다.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숭고한 생명사상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그는 감옥에서도 인간을 하늘로 보고 받들었다. 그는 자신을 걱정하는 지인에게 이런 전갈을 보냈다. “돈 50냥만 있으면 요긴하게 쓸 일이 있으니 변통해 주기를 바란다.” 그는 그 50냥으로 떡을 사 배고픔에 시달리는 죄수들에게 나눠주었다. 그에게는 그 죄수들이 하늘이었다. 타인의 고통과 생명을 먹고 사는 제국, 그 제국의 화가가 포착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