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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철희]美 ‘쿠데타’ 논란

입력 | 2019-02-20 03:00:00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의 주요 소재는 대통령의 유고(有故)에 대비해 승계 원칙을 정한 수정헌법 25조다. 대통령 국정연설 도중 발생한 폭탄테러로 백악관과 내각, 의회 참석자 전원이 사망하면서 승계순위 말석의 주택도시개발장관이 졸지에 대통령직을 맡아 위기를 헤쳐 나가는 스토리다. 그런 그마저 아내 사망 이후 받은 심리상담 기록이 유출되면서 직무수행 능력에 의문이 제기된다. 급기야 장관들이 따로 모여 그의 직무 박탈을 논의한다.

▷미 수정헌법 25조 중 제4항은 내각 과반수가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부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리면 의회에 통보하고 대통령이 거부하면 상·하원 3분의 2 찬성으로 직무를 박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이 실제 발동된 적도, 심각하게 거론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겐 예외인 듯하다. 의회의 무성한 탄핵 논의와는 별도로 지난해 9월 뉴욕타임스엔 “일군의 관료들이 수정헌법 25조를 적용하려는 속삭임이 진작부터 있었다”는 익명의 기고문이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 저항세력의 일원이다’란 제목으로 실렸다.

▷한낱 음모론으로 여겨졌던 트럼프 직무 박탈 논의가 실제 행정부 안에서 벌어졌다는 증언이 최근 나왔다. 트럼프가 2017년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던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경질한 직후 로드 로즌스타인 당시 법무부 부장관이 트럼프의 직무 박탈을 위해 장관들을 설득하려 했다고 FBI 국장대행이 언론 인터뷰에서 공개했다. 직무수행 부적합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도청기로 대통령과의 대화를 녹음하는 방안도 거론됐다고 한다.

▷폭스뉴스는 이를 두고 “불법적 쿠데타 시도”라고 규정했고, 트럼프도 즉각 맞장구쳤다. 그러자 그런 논의를 과연 무력으로 정권을 전복하는 쿠데타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까지 낳고 있다. 이미 악성 나르시시즘, 공감능력 결핍, 경조증(輕躁症) 같은 수많은 정신의학적 의심을 받아온 트럼프다. 재작년 의회에선 트럼프에게 핵무기 버튼을 맡겨도 될지 논의하는 청문회도 열렸다. 하지만 트럼프는 끄떡없다. 논란으로 논란을 덮는 대통령을 누가 이기랴.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