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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헌재]오재원과 마쓰자카에게 배워라

입력 | 2019-02-20 03:00:00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국민타자’ 이승엽(43)은 은퇴 이후에도 KBO 홍보위원과 기술위원, 그리고 이승엽야구장학재단 이사장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야구계에서 그는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몇 안 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기사에는 어김없이 ‘악플’이 붙는다. 현역 시절 그의 팬 서비스와 관련된 팬들의 불만이다. 2016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팬들이 원하는 대로 해 드리다 보니 사인에 대한 희소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발언이 인터넷상에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일부 팬 사이에서는 이승엽은 팬 서비스에 인색한 선수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이 말만 놓고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승엽은 원래 팬들에게 무척 친절한 선수였다. 그 말을 할 당시엔 그가 사인에 까다로웠던 사정이 있었다. 그는 언젠가 기자에게 “어딜 가나 사인 공세를 받았다. 내가 못 해서 팀이 경기에 진 날도 라커룸에 와 보면 사인해야 할 공이 몇 박스씩 쌓여 있었다.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고 호소했다. 그의 사인공은 당시 몇 배의 웃돈을 얹어 온라인상에서 거래되기도 했다. 그는 “내 사인공이 직거래된다는 걸 알고 ‘사인을 해줘서는 안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도 했다.

이승엽뿐 아니라 적지 않은 선수가 팬 서비스를 둘러싸고 팬들과 갈등을 빚는다. 몇몇 선수는 이렇게 말한다. “눈앞에서 공책 한 장을 찢은 뒤 당연한 듯 사인을 요청한다.” “나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데 식당에서건, 공공장소에서건 가리지 않고 사인을 해 달라고 한다.” “사정상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지나가려 하는데 뒤에서 욕이 날아들었다” 등등. 다른 사람에게 팔 목적으로 사인공을 받으려고 선수들을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팬들 역시 할 말이 많다. 많은 팬이 좋아하는 선수의 사인 한 장 받으려고 경기 후 1시간 넘게 밖에서 기다린다. 순수한 마음으로 방문경기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휙 지나가는 선수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모두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더욱 신경 써야 하는 쪽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수들이다. 지난주 일본 야구계를 발칵 뒤집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주니치의 스타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39)가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 주는 과정에서 한 팬이 그의 팔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어깨를 다친 것이다. 개막전 등판이 힘들어졌지만 마쓰자카의 대응은 의연했다. 오히려 팬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KBO리그 두산의 오재원(34)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팬 서비스에 열심이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SK에 우승컵을 넘겨준 날에도 오재원은 밤늦게까지 기다리던 팬들 모두에게 사인을 해줬다. 이승엽도 요즘엔 “선수 때 못해 드린 사인들 최대한 많이 해드리려 노력한다”고 했다.

팬 없는 프로 스포츠는 존재 이유가 없다. 예의만 지킨다면 선수들도 팬들을 멀리하지 않는다. 올 시즌엔 팬 서비스 때문에 선수들과 팬들이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