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 말만 놓고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승엽은 원래 팬들에게 무척 친절한 선수였다. 그 말을 할 당시엔 그가 사인에 까다로웠던 사정이 있었다. 그는 언젠가 기자에게 “어딜 가나 사인 공세를 받았다. 내가 못 해서 팀이 경기에 진 날도 라커룸에 와 보면 사인해야 할 공이 몇 박스씩 쌓여 있었다.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고 호소했다. 그의 사인공은 당시 몇 배의 웃돈을 얹어 온라인상에서 거래되기도 했다. 그는 “내 사인공이 직거래된다는 걸 알고 ‘사인을 해줘서는 안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도 했다.
이승엽뿐 아니라 적지 않은 선수가 팬 서비스를 둘러싸고 팬들과 갈등을 빚는다. 몇몇 선수는 이렇게 말한다. “눈앞에서 공책 한 장을 찢은 뒤 당연한 듯 사인을 요청한다.” “나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데 식당에서건, 공공장소에서건 가리지 않고 사인을 해 달라고 한다.” “사정상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지나가려 하는데 뒤에서 욕이 날아들었다” 등등. 다른 사람에게 팔 목적으로 사인공을 받으려고 선수들을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팬들 역시 할 말이 많다. 많은 팬이 좋아하는 선수의 사인 한 장 받으려고 경기 후 1시간 넘게 밖에서 기다린다. 순수한 마음으로 방문경기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휙 지나가는 선수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팬 없는 프로 스포츠는 존재 이유가 없다. 예의만 지킨다면 선수들도 팬들을 멀리하지 않는다. 올 시즌엔 팬 서비스 때문에 선수들과 팬들이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