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도지사 구하기에 집권세력이 총동원되는 분위기다. 김경수가 누군가. 17대 대선에서 ‘드루킹’과 공모해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로 지난달 30일 법정 구속된 대통령 최측근이다.
19일 집권당은 1심 판결문을 분석해 “형사소송법 대원칙을 망각한 판결”이라며 재판부를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반민주적 행위다.
말은 참 잘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는 이럴 줄 알았는지 “국정원 댓글은 불법이고 ‘문슬람’ 댓글은 적법한가” 공격한 적이 있다. 작년 초, 드루킹과 김경수는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물론 1심 판결은 2심에서 뒤집힐 수도 있다. 나는 대선 불복할 의사도 없고, 설령 김경수가 댓글 조작을 했다고 해도 지난 대선 결과가 바뀌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국정원 댓글 조작도 마찬가지였다. 정권이 17대 대선에 댓글로 개입했으나 그 정도로 박근혜 당선이 뒤바뀌진 않았을 것이다.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댓글 여론 조작’을 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달 30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모습. 동아일보DB
그러나 2013년 문재인 당시 의원은 “지난해 대선이 대단히 불공정하게 치러졌고 그 혜택을 박 대통령이 받았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댓글만 아니었으면 대선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 듯한 얘기다.
김경수는 임종석 부려먹을 만큼 대단한가?
지난 대선에서 야당이 집권세력처럼 국가기관을 동원할 수 없어 대신 동원한 것이 드루킹 같은 비선조직이다. 문재인의 과거 논리를 적용하면, 드루킹 댓글만 아니었으면 대선 결과는 달라졌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 집권세력이 지나칠 만큼 ‘재판부 때려 김경수 구하기’에 총동원된 것도 바로 이런 가능성 때문일 터다. 그렇다면 대통령을 만드는 이 중차대한 일에 왜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김경수가 나선 것일까.
드루킹은 “임종석 비서실장은 김경수가 청와대에 박아놓고 부려먹는 아바타”라고 작년 11월 증언한 바 있다. ‘청와대 실세는 임종석’이라는 당시의 인식을 뒤집는 천기누설이다. 김경수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 임종석을 부릴 만큼 대단한 사람이란 말인가?
전대협의 배후실세, 자민통과 김경수
답을 찾기 위해 과거 기사를 뒤져봤다. “전대협이 북한의 통일전선부 산하 대남 위장 선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투쟁지침에 따라 공산 적화통일을 목표로 결성된 친북 지하 비밀조직 자유·민주·통일그룹(자민통)의 배후조정을 받아온 사실을 밝혀냈다”고 1990년 안전기획부가 발표한 기사다.
2017년 신동아 4월호(691호)는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하는 김경수 의원, 양정철 씨와 정청래 전 의원 등이 자민통 계열’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맞는다면, 임종석은 ‘김경수가 청와대에 박아놓고 부리는 아바타’라는 드루킹의 증언은 의미심장하다.
2017년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던 김경수 의원이 1992년까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지도했던 자유·민주·통일그룹(자민통) 계열이라고 보도한 신동아 기사(2017년 4월호·691호). 신동아 캡처
“주사파의 믿음은 종교적 수준”
여기서 젊은 날의 사상을 따지고 싶진 않다. 다만 자민통 리더였던 구해우 씨가 “주체사상에 대한 주사파 조직 후배들의 믿음은 거의 종교적 수준”이라고 2012년 신동아에 쓴 대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주사파 출신 중에는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한 뒤 민족 종교에 입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념은 종교다. 그것도 자신만 옳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일신교다. 광신자들이 그렇듯이 사람의 사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보통의 무슬림과 무슬림형제단(이하 형제단)이 다른 점이 이거다. 관용이나 공존, 전향 같은 건 배교(背敎)라며 성전(聖戰)을 불사하는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다녀왔기 때문일까. 노무현 정부 때는 ‘탈레반’, 지금은 ‘문슬람’이라고 불리는 집권세력 86그룹 중에서도 강경파의 행태는 형제단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2009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 출두에 앞서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 앞에서있다. 뒤편으로는 노무현 정부 때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재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함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무슬림형제단과 문슬람의 닮은 점
1928년 영국의 식민통치에 저항해 창설된 형제단은 샤리아가 지배하는 이슬람국가 건설을 꿈꾼다. 아직도 일본 식민통치 청산을 부르짖는 문슬람은 ‘남북이 한민족’이라는 인종적 민족주의에 종교나 다름없는 좌파 이념을 결합시킨 운동집단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둘째, 뛰어난 조직력과 선전선동, 필요하면 적과도 동침하는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한다.
형제단이 내세운 얼굴마담들은 강력한 폭력투쟁을 벌이는 한편 민생복지, 교육, 의료서비스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980년대 이후엔 대학과 지식인, 엘리트사회로 저변을 넓혔다.
2011년 이집트 민주혁명 뒤 형제단 소속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도 통일전선전술의 성공으로 평가된다. 1980년대 이후 운동권 출신의 ‘애국적 사회진출’, 대통령을 ‘도구’로 사용하다 나중엔 택군(擇君)까지 해낸 86그룹과 흡사하지 않은가.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이슬람 국가 건설을 꿈꾼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이집트 시나이 반도 북부와 서쪽의 리비아 접경지에서 이집트 군부가 반정부 무장 조직원을 사살하는 모습. 시나이 반도는 무슬림형제단 소속의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이 축출된 2013년부터 반정부 무장 조직의 온상이 되고 있다. 카이로=AP 뉴시스
거꾸로 가는 시대착오적 통치를 어쩔 건가
셋째, 세상 흐름과 담을 쌓아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ㅠㅠ.
무슬림형제단 비밀단원이었던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 동아일보DB
나세르는 쿠데타 동지로 형제단을 활용했으나 이슬람 근본주의로 나라를 이끌 생각은 없었다. 세속주의에 아랍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시키는 방향을 분명히 하자 형제단은 배신당했다며 나세르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4년 무르시 정권을 끝장낸 쿠데타까지, 군부와 형제단의 전쟁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던 거다.
이집트 국민이 군부의 등장을 요구한 데는 전체주의 독재로 달려가는 형제단의 시대착오적 종교가 크게 작용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우리나라는 군부가 등장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임계치로 달려가는 이 나라의 전체주의적, 시대착오적, 이념적 통치는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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