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물밑작업 덕분인지 실제 상하이 임정은 속도감 있게 구성됐다. 3·1운동 함성이 터진 지 한 달여 만인 4월 11일에 임정을 만들어 국호(대한민국)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임시헌장을 채택했다. 이처럼 기민하게 움직인 배경엔 긴박한 외교전을 고려했다는 관측도 있다. 그해 1월 개막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김규식이 조선독립을 이슈화하기 위해선 ‘국가 대표’ 자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임정이 수립되자 김규식은 현지에서 ‘임시정부 외무총장’ 자격으로 세계 각국 지도자와 언론을 상대로 조선독립을 호소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전승국이었던 일본의 위세 때문에 김규식의 호소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이었지만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세계만방에 알린 신호탄이었다.
▷임정 수립 기념일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4월 11일이 아니라 임정을 선포한 4월 13일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학계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임정 국호와 임시헌장을 만든 4월 11일로 임정 수립일을 바꾸기로 했다. 1937년 이후 임정 수립 기념식을 매년 4월 11일에 했다는 기록 등도 이를 뒷받침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