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향하는 동아리, 숙명여대 북한 인권 동아리 H.A.N.A.
“통일은 사람을 위한 것인데, 통일을 위한 논의에서 사람이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통일이 정치, 군사, 외교적으로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난달 22일 <북한 인권 토크콘서트>에서 사회를 맡은 숙명여자대학교 북한 인권 동아리 H.A.N.A.(Humanitarian Action for North Korea) 대외협력부장 강지운 씨(숙명여대 독일언어문화학과 2학년)는 토크콘서트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H.A.N.A.가 주최한 북한 인권 토크콘서트에는 북한의 예술대학 교수 출신인 탈북자 허영희 씨가 연사로 섰다. 왜 허영희 씨를 모셨는지 인턴기자가 이유를 묻자, “크레바스(crevasse)처럼 아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잖아요, 허영희 선생님 같은 분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해서 (북한 사람들이 받는 고통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숙명여자대학교 북한 인권 동아리 H.A.N.A. 로고. H.A.N.A. 제공
모든 활동에 공을 들이는 H.A.N.A. 회원들은 펀드레이징에도 최선을 다했다. 핏줄이 터지도록 13~14시간씩 아몬드 초콜릿을 만들고 그 수제 간식을 직접 길거리에서 팔아 모금한 뒤 원금까지 모두 북한 여성 인권활동에 기부했다. 이번 콘서트에서도 모금용 얼그레이 쨈을 만들었는데, 10명이 넘는 회원이 모여 8시간 넘게 일했다고 했다. 수익금은 모두 강연을 위해 사용되었다.
토크콘서트에서 안내를 하는 구주은 회장. 문영란 인턴기자
청년들로 가득 자리를 메운 인권 토크콘서트 현장에서도 그녀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일찍부터 사람들을 안내하던 구주은 회장(숙명여대 경제학과 2학년)은 펀드레이징용 얼그레이 쨈을 거의 다 팔자마자 다시 다른 일을 시작했다. “모두가 알아서 잘 해요”라는 그녀의 말처럼,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역시 자발적 동아리였다. 덕분에 빠르게 정돈된 분위기에서 토크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북한 인권 토크콘서트에서 연사 허영희 씨가 강연하는 모습. 문영란 인턴기자
이날 강연자 허영희 씨는 콘서트 시작 몇 시간 전 강연장에 도착해 준비했다. 미리 준비했던 남북통일이라는 거시적인 이야기는 비교적 적게 다뤘다. 청중과의 교감에 집중하기 위해 본인이 경험하거나 목격한 북한 인권의 실상을 중점적으로 나눴다. 강연장을 가득 채운 청중은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제주도에 있는 한 리조트에서 청소노동을 했는데, 적은 월급을 모으고 또 모아도, 태산 같은 탈북비용은 모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동료들이 돈을 빌려줘 북한에 연락할 수 있었다. 고마움은 잠시, 남편과 아들은 이미 정치범수용소에 갇혀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그런 줄 알고 살면 될 텐데….” 피붙이가 수용소에서 어떤 고통을 받고 있을지를 상상하면서 사는 끔찍한 삶의 절절한 고통이 자리에 모인 청년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북한 인권 토크콘서트에서 허영희 씨에게 질문하는 청중. 문영란 인턴기자
콘서트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어 4시간 넘겨 진행됐지만 청중은 여전히 집중했다. 북한 인권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들은 겨울방학의 한가운데에서, 그것도 평일 저녁시간을 기꺼이 할애했다. H.A.N.A.가 알리고자 했던 북한 인권의 현실이 수많은 청년들에게 성공적으로 전해지는 시간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공식 인사하는 H.A.N.A. 회원들. 문영란 인턴기자
새해 첫 달부터 큰 행사를 개최한 H.A.N.A. 동아리 회원은 21명으로, 18개 학과에서 모였다. 너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차기회장 김현정 씨(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는 “가까이 사는 저 사람들의 인권을 내가 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까? 주변의 인권을 돌아보며 배우고 싶다!”는 한 마음으로 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단 한명의 무임승차도 없고 신기할 정도로 서로 잘 맞는 동아리라고 설명했다. 김 차기회장은 “구성원 모두가 활동이 있으면 돕고 싶어 하고, 모금활동을 하면 1원도 남김없이 기부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수평적인 동아리답게 올해는 새로운 부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것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분명 ‘스펙쌓기’에 다들 바쁠 텐데 어떻게 이런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냐는 물음에, 강지운 대외협력부장은 “예민한 주제라 많은 분들이 공개적으로 언급을 못하거나 외면하는데,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서 누구도 선뜻 말하지 못하는 북한 인권 문제, 그녀들이 말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실천하는 지성이었다.
문영란 우아한 사무국 인턴기자(서울대 외교학과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