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숙 산업1부장
우리나라 산업현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이처럼 안전과 관련한 전문 기술자들이 필요하다.
화학공장만 해도 그렇다. 한국의 대표 화학단지인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자리 잡은 정유화학사들은 3, 4년에 한 번 1, 2개월간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대정비’의 시간을 갖는다. 공장 안에 빽빽이 들어선 파이프에 간 균열, 파이프 내부에 낀 때 등을 정비하는 배관, 용접 작업을 비롯해 전기 점검까지 총체적으로 이뤄진다. 이때 투입되는 정비공은 대부분 숙련된 기술자다. 눈앞에 보이는 균열은 좀 덜 숙련된 기술자도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연달아 촘촘히 서 있는 거대 파이프 뒷면에 균열이 갔을 때는 고도의 기술자를 투입해야 한다. 이들은 파이프 뒷면 양쪽에 손거울을 놓고 거울에 비춰 거꾸로 보이는 균열을 양손을 동시에 써서 균질하게 보수한다. 이들의 작업을 현장에서 실제로 본 사람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근무는 올해부터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크다. 주 52시간 근로제 처벌 유예기간이 끝나지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은 6개월로 합의돼서다. 그나마 현행 3개월보다는 늘어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1년이라면 이들은 법을 어기지 않을 수 있지만 노사정 대표들은 여러 차례의 파열음 끝에 6개월로 합의했을 뿐이다. 그나마 이 합의안도 국회를 통과해야 효력이 생긴다.
이 문제는 단순히 근로 형태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여수산단에서 한 대기업의 대정비를 십여 년째 맡고 있는 어느 협력업체는 대정비만으로 연 2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고 했다. 앞으로 이 회사가 법을 지키는 범위에서 같은 규모의 매출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 기술자 풀은 한정돼 있고, 회사가 비용을 늘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많은 회사가 비숙련공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
최근 산업현장에서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나는 배경에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런 구조도 한몫하고 있다는 게 산업계의 얘기다.
대부분 기업은 생산현장 무사고를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생때같은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기도 하지만 안전사고를 낼 경우 지방노동청으로부터 강제 생산중단 명령을 받는 등 잃을 게 너무 많아서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협력업체 직원이 문제를 발견하면 원청업체에 보고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대신 직접 ‘작업중지 명령권’을 갖게 하는 곳도 많다.
어느 모로 보나 합리적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1년이 합의의 테이블에선 왜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가.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